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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위한 그라민은행, 방글라데시 정부 경영간섭 심해진다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13. 11. 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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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규제 강화 법안 의회 통과

ㆍ통제·감시 논란과 함께 “유누스 박사 견제 위한 정치 의도 있다” 분석도

그라민은행의 경영에 방글라데시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지난 5일 의회를 통과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운동의 ‘대부’ 격인 그라민은행이 정부 통제에 놓이게 되면서, 자생적 풀뿌리 단체인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법안 통과 뒤에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사진)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새 법안은 이사회 개최를 위한 최소 정원 기준을 4명에서 3명으로 축소했다. 정부가 추천할 수 있는 이사 수가 3명이어서 앞으로 정부는 나머지 9명 이사의 의사와 상관없이 손쉽게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 총재를 선출하는 선출위원회 의장 역시 정부가 지명한 이사 3명 중 1명이 맡도록 하고, 선출된 총재는 임명 전 반드시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법안은 또 그라민은행이 누려온 다양한 세제 혜택의 상당 부분을 박탈하고, 모든 거래 내역을 정부에 신고하도록 했다. 

유누스 박사는 성명서에서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여성들의 것”이라면서 “방글라데시가 낳은 세계적 아이콘인 그라민은행이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자들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데 대해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지 신문 데일리스타는 정부가 지명하지 않은 이사 9명과 노조가 “이번 법안으로 그라민은행은 정부의 손아귀 아래 놓이게 됐다”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AMA 무히스 재무장관이 이 같은 비판을 예상한 듯 법안 통과 직후 “정부는 유누스 박사를 존중하는 뜻에서 그라민은행의 조직과 성격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면서 “새 법안의 목적은 단지 그라민은행의 서비스를 더 많은 빈곤층에게 확대하는 동시에 은행의 주주들에게 대출 수익의 일부를 배당으로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다카트리뷴이 전했다. 여당인 아와미연맹(AL) 소속의 AHM 무스타파 카말 의원도 “정부와 중앙은행은 그라민은행 운영에 대해 알 권리를 당연히 갖고 있다”며 유누스 측 주장을 일축했다.


그라민은행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은 최근 그라민은행에 돈을 빌린 여성들이 과도한 추심 압박 때문에 장기밀매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라민폰을 비롯해 48개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한 그라민은행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역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감시 강화를 빌미로 정부가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은행 문턱이 높아 돈을 빌리지 못하는 빈곤층을 위해 탄생한 것인데, 중앙은행이 직접 경영을 통제하게 될 경우 설립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법안 통과가 최근 정치적 행보를 걷고 있는 유누스 박사에 대한 정치적 공세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2007년 정계 입문을 선언한 후 하시나 총리와 대립각을 펼쳐온 유누스 박사는 2011년 석연찮은 이유로 총재직에서 해임됐고, 지난 9월에도 탈세 혐의로 정부의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다. 야당 측은 정부가 그라민은행 소유의 기업들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함으로써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동시에, 수백만명의 은행 고객들을 ‘잠재적 표’로 활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직 관리이자 경제학자인 아크바 알리 칸도 “그라민은행은 망가지지 않았는데 왜 고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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