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직도 먼 학생인권](上) ‘차별’을 배우는 아이들

인권

by 정소군 2011. 3. 7. 00:30

본문

ㆍ선생님·기숙사·냉난방까지 성적순인 ‘계급교실’

고단한 하루는 이제 끝난 것일까. 지난 3일 인천 ㅅ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학교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성적에 따라 접근이 허락되는 학교 시설이 다르고, 성적에 따라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질도 달라진다. 학생들 사이에서 “전교 몇 등까지는 ‘귀족’, 나머지는 ‘평민’이거나 ‘들러리’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의 비평준화 지역에서 명문고로 꼽히는 ㅇ고교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학생을 철저히 성적에 따라 선발한다. 비평준화 지역 학교인 만큼 다른 시·군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집이 먼 학생들을 배려하는 부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모의고사 언어·수학·외국어 성적 60%와 기말고사 국·영·수 성적 40%를 반영해 기숙사생을 선발하는데 원거리 가산점은 2%에 불과하다. 이 학교 김모군(17)은 “집이 멀어 기숙사에 꼭 들어가야 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점수가 모자라 기숙사 입실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부천의 ㄱ여고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기숙사는 원거리 학생들을 위한 일반실과 전교 1~40등만 들어갈 수 있는 ‘○○관’으로 나뉘는데, ○○관 학생에게는 온갖 특혜가 주어진다. 임모양(16)은 “잘 가르쳐서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은 방과후학교 때 늘 ○○관 학생들만 모아놓은 수업에 들어간다. 가끔 ○○관 학생들만 신청할 수 있는 특강도 개설되는데 일반 학생들이 듣는 강의보다 수업료도 훨씬 싸다”고 말했다.

‘수준별 수업’은 정규수업에서도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차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부천 ㄱ여고는 컴퓨터와 연동돼 학습에 필요한 자료나 동영상을 곧바로 칠판에 띄울 수 있는 전자칠판을 들여왔는데, 이 최신식 학습도구는 최상위권 학생들을 모아놓은 A반에서만 사용된다. 원어민 영어강사도 공부를 잘하는 A반 위주로 배치된다. 역시 수준별 수업을 하고 있는 서울 ㅎ여고의 김모양(17)은 “난 다행히 A반이라서 영어시간에 원어민 수업을 받는데, 다른 반 아이들은 그것도 못 듣는다”고 했다.

성적 분반에 따라 수업 환경도 달라진다. 서울 ㄷ여고 이모양(18)은 “A반은 선생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고 밀착지도를 하지만, C반이나 D반은 선생님이 ‘잠만 자지 말라’며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딴짓을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각자에 맞는 교육환경을 제공하겠다며 도입한 ‘수준별 수업’이 공부 잘하는 반에만 학교 역량을 집중시켜 수준을 고착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에 따라 무리지어 이동해야 한다. 인천 ㅇ여고에는 ‘빨간 독서실’로 불리는 방이 있다. 전교 1~10등만 출입이 허락되는 자습실이다. 전교 11~60등은 일반 독서실, 그리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공부한다. 교실은 중앙난방 시스템이라 싸늘한 경우가 많지만 ‘빨간 독서실’은 다르다. 여기에는 에어컨·온풍기 겸용 기기가 있어 학생들이 언제든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방 안에 정수기도 있고, 화장실도 따로 설치돼 있다. 안모양(18)은 “원래 등수 안되는 아이들은 드나들면 안되는데, 가끔 친구 만나러 그 방에 다녀온 아이들이 ‘거긴 완전 별세계’라고 하더라. 다 같은 친구들인데 너무 위화감이 든다”고 했다. 인천 ㄷ고는 전교 1~50등만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을 만들어 점심을 먼저 먹게 한 뒤 점심시간을 통째로 공부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특별대우도 문제다. 입학사정관제 등으로 각종 경시대회나 외부 활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정보는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알려진다. 지난해 서울 ㅂ고에는 전주의 유명한 자립형 사립고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담임교사의 편애는 반 1등에서 전학생으로 옮겨갔다. 황모양(17)은 “워낙 공부 잘하는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라 학교의 기대가 큰 것 같다”면서 “그동안은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1등에게만 고급 정보를 몰아줬는데, 전학생이 오자 우리 반 1등이 ‘이제 나한테는 국물도 없더라’고 했다”고 전했다.

 

정유진·이서화 기자 sogun77@kyunghyang.com

 

 

 

‘차별’ 왜 심해지나

 

 

ㆍ학교별 성적 공개로 가속… 우열반 편성 장려도 문제

 

 

학교나 교사의 학생 차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늘 고달팠다. 하지만 학교별 성적 공개로 학교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우열반 편성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차별은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08년 도입된 학교정보 공시제도로 지난해부터 전국의 학교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성적과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을 공개하게 됐다. 전국 학교가 성적을 기준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서게 된 것이다. 교육 수요자들은 ‘공부 잘하는 학교’와 ‘못하는 학교’를 구분해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도 야간 자율학습과 정규수업 전 0교시 수업, 문제풀이 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교육당국이 ‘수준별 이동수업 내실화’를 강조하며 우열반 편성을 장려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동훈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수준별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며 “현 정부는 비교육적 줄 세우기와 차별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누리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간사는 “반드시 우열반을 만들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적성과 학습성향을 고려한 효과적 교육방안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적에 따른 차별이 고교에만 퍼져 있는 것도 아니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 사립고 등의 증가로 고입 경쟁이 격화하면서 중학교·초등학교 단계로도 차별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둘째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한 학부모는 “외국어고나 과학고 합격생을 많이 배출해야 명문으로 소문나기 때문에, 중학교 선생님들도 공부 잘하는 아이만 감싸고 도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오로지 명문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되면서 학생들을 성적으로만 구분하게 되고 차별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같은 학교 내에서도 학년 간 차별이 존재하기도 한다. 지난해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한 서울 ㅇ고의 3학년 민모양(18)은 “선생님들이나 학교 측에서, 자율고로 바뀐 뒤 들어온 1학년과 이전 일반고일 때 들어온 2·3학년을 차별한다”고 말했다. 민양은 “1학년에는 명문대를 나오거나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선생님을 배치하고, 급식도 1학년을 먼저 먹게 한다. 2·3학년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심혜리·박효재 기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