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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드라마 속 ‘을’ 꾸짖는 ‘을’들

칼럼

by 정소군 2015. 5.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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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나라답게 사회계급 문제를 다룬 드라마가 많았다. 고된 현실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북쪽의 우리 친구들>(1964~1995년) 같은 드라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영국의 작가나 감독들에게 노동자의 삶은 늘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국 드라마에서 계급적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대처리즘의 종말과 ‘제3의 길’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대중은 더 이상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몇년 전 영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자신은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금융위기 이후 영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해오고 있는데 말이다.

반면 한국의 드라마는 예나 지금이나 줄기차게 ‘계급 갈등’을 주요 배경으로 등장시켜왔다. 문제는 이것이 서민 여성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데 있지만 “천한 것!”이라며 물컵을 던지는 재벌가 마님이 등장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서민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꿰뚫어볼 줄 아는 재벌가 황태자 한 명을 알리바이 삼아 모든 갈등은 갑작스러운 해피엔딩 뒤로 숨어버리곤 했다.


그런 면에서 현재 SBS에서 방영 중인 <풍문으로 들었소>는 참신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 ‘계급 갈등’은 주제 그 자체로서 전면에 다뤄진다. 최고의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 한정호(유준상)는 정·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권력가다. 겉으로는 지성인인 척하지만 속내는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의 이중성이 이 드라마의 볼거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한정호의 비서, 민주영(장소연)이라는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다. 민주영은 이 드라마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오빠는 사측의 불법 대량해고에 맞서다가 몸과 정신이 모두 파괴됐다. 그때 사측의 불법을 합법으로 조작해 준 것이 바로 한송이었다. 오빠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은 민주영은 한송 내에서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이런 민주영이 시청자의 미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채팅창에서는 “이길 확률도 없는데 왜 저러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구든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갑보다 을이 미운 드라마는 처음”이라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자기 마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주인공의 권력이다. 주인공은 무슨 짓을 해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 쉽다.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의 특혜를 부여받은 주인공은 숨은 매력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행동을 이해시키기에 유리하다.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잘해 주는지 몰라도 툭하면 폭력성 돌발 행동에 경영 능력마저 검증되지 않은 드라마 <비밀>의 재벌2세 조민혁(지성)이 이사회에서 경영권을 뺏기게 될까봐, 그때도 얼마나 마음 졸이며 보곤 했던가. 그래도 다행히 이건 드라마일 뿐이다. 민주영은 주인공 한정호를 결정적 위기에 빠뜨리게 될 인물이니 사람들은 “이래선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를 미워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드라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인 ‘현실’에 있다. 혹시 ‘중산층의 신화’에 빠져 자신이 노동자임을 잊고 엉뚱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고 있지는 않았나. 언제든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해고 동료의 어려움보다 오히려 재벌 총수의 건강만 염려하고 있지는 않았나.

사실 ‘갑’들은 현실에서도 드라마 주인공과 같은 권력을 누린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시시콜콜한 고민은 늘 주류 언론의 지면을 차지한다. 그래도 잊지 말자.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인데, 내가 나에게 가장 유리한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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