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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볼티모어 폭동]‘사법정의’ 외치던 평화시위대와 무장경찰 충돌… 군까지 투입

국제뉴스/남북 아메리카

by 정소군 2015. 4. 2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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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내 중심가 장악하자’ 메시지 돌자 학생들 몰려 경찰차 방화·가게 약탈
ㆍ일주일간 야간 통행금지“킹 목사 이후 최대 폭동”

 

 경찰차가 불탔다. 사람들은 지붕을 부수고 상점으로 들어가 물건을 싹쓸이한 후 불을 질렀다. 거리는 온통 매캐한 검은 연기와 화염으로 뒤덮였다. 경찰들은 날아오는 벽돌과 몽둥이를 피해 장갑차 뒤에 숨었다. 메릴랜드 주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즉시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CNN 기자는 27일(현지시간) “지금 볼티모어는 전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경찰에 체포된 지 1주일만에 척추 부상으로 사망한 프레디 그레이(25)의 장례식이 열린 날이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침착하고 평화로웠다. 뉴실로침례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은 단순히 그레이를 추모하는 것을 넘어서, 흑인인권 향상을 촉구하는 ‘평화와 정의’의 상징과도 같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고 몇시간 후 볼티모어 웨스트디스트릭트에 있는 몬다민 몰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시작됐다. ‘사법정의’를 외치던 시위대는 곤봉과 헬멧, 방패 등으로 무장하고 진압에 나선 경찰들에게 돌멩이와 벽돌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시위대는 유리를 깨고 상점에 침입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이 과정에서 15명의 경찰관이 다쳤고 이 중 2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은 뼈가 부러졌거나 혼수 상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몬다민 몰 일대에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채소가게나 주류가게가 많아 교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척추를 다쳐 사망한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폭동으로 비화된 27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내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볼티모어 | AP연합뉴스


 

 그레이의 유족들은 “이런 폭력행위는 우리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아들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중단을 호소했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시위와 폭동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강력대응을 천명했다.


 시위대의 상당수는 고등학생이었다. 웨스트디스트릭트에서 주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교민 박모씨는 경향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잘못을 저지른 흑인 한 명이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가 이곳에서 잡혔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하교하던 고등학생들이 몰려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 트위터 상에서 ‘퍼지’라는 암호명 아래 이날 오후 3시 몬다민 몰에서 모여 시내 중심가를 장악하자는 메시지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미 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일간 볼티모어선은 ‘퍼지’란 단어가 2013년 개봉한 영화 ‘더 퍼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법의 통제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모든 범법행위가 용인되는 국가공휴일 ‘퍼지데이’에 12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가을부터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에서 ‘퍼지데이’를 열자는 10대들의 트위터가 꾸준히 돌았지만 모두 루머에 그쳤다”면서 “‘퍼지’의 정체와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볼티모어 경찰 당국은 또 “갱단들이 힘을 합쳐 법 집행기관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제휴하기로 했다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경계태세를 높였다. 그러나 어디에서 얻은 정보인지 밝히지 않았다.


 경찰이 최루가스를 뿌리고 수십명의 시위대를 체포하며 진압을 시도했지만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주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주방위군 5000명을 동원키로 하고 이 중 1500명을 우선 현장에 투입했다. 주경찰도 5000명을 볼티모어로 집결시켜 시위진압에 나섰다. 볼티모어시는 28일부터 향후 일주일간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날 임명장을 받은 미국의 첫 흑인여성 법무장관 로레타 린치도 즉시 “비상식적인 폭력행위”라고 규탄하며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번 사태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직후 일어난 1968년 4월 볼티모어 소요사태 이후 최악의 폭동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민 박씨는 “볼티모어 경찰이 원래 과격하기로는 시카고, 뉴욕 등에 이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면서 “평상시에도 말을 안 들으면 영화에 나오듯이 바로 팔을 꺾는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경찰들에게 악감정이 많은 흑인 청소년들이 군중심리에 휩쓸려 이번 소요사태에 대거 가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정유진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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