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정남 할머니(75)는 지난 14일, 한 평 남짓한 좁은 가로판매대(가판대) 부스 안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 청량리역 근처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중 그의 가판대 앞에서 발길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더워진 초여름 날씨에 대비해 일찌감치 시원한 음료수들을 차곡차곡 쌓아 놨지만, 그는 냉장고 문이 마지막으로 열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시간 반 동안 팔린 것이라곤 담배 세 갑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벌이가 임대아파트 임차료 내기도 빠듯한 15만원 정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는 진열대 과자 위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면서 “기자 양반 같으면 먼지 쌓인 길거리 매점 물건을 사겠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는 게 ‘삐까뻔쩍’한 24시간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인데 우리가 배겨낼 재간이 없지”라고 스스로 답했다. 


원래 명동에서 노점상을 했던 그는 88올림픽을 전후해 정부가 노점상 단속을 강화하면서 대신 이곳에 자리를 얻었다. 청량리에서 가판대 장사를 시작한 것도 벌써 23년째다.


나이도 들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기초생활 수급신청도 해봤지만 자식이 3명이나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하지만 이들도 모두 넉넉지 못해 형 할머니에게 한 달에 20만원가량 보내주는 정도다. 그는 “영감 먼저 가고나서 내게 남은 건 이거 컨테이너 박스 하나뿐”이라며 “자식들도 겨우 앞가림하고 사는데 나까지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 평생 해온 것인 만큼 어떻게든 꾸려나가 죽을 때까지 이 걸로 내 한몸 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판대도 전성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가판대 앞에서 줄을 설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편의점이 있길 했나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있길 했나. 길거리에서 담배나 음료수를 살 수 있는 곳이 가판대밖에 없었지. 버스 기다리면서 신문도 사서 읽고 담배도 피우고 음료수도 사먹고….” 


가판대 옆에 있던 버스 정류장은 버스중앙차로제가 도입되면서 7년 전 도로 건너편 청량리 환승센터로 이전했다. 가판대의 효자 품목이었던 신문은 3~4년 전부터 아예 취급을 포기했다. 3m가량 떨어진 지하철역 입구에서 아침마다 무가지가 배포되자 가판대 신문을 찾는 손님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형 할머니는 넉 달 전부터 폐지 수집에 나섰다. 틈 날 때마다 근처 옷가게 등을 돌며 빈 박스를 모아 온다. 가판대 도로점용료와 시설이용료를 석 달 가까이 연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없이 살아도 평생 세금만큼은 밀린 적이 없었어. 작년엔 일수를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냈다고. 그런데 15만원도 안되는 월수입으로 이젠 도저히 방법이 없어.” 연체 고지서에는 도로점용료 65만9670원과 시설이용료 51만400원, 도합 120만원에 달하는 액수가 찍혀 있었다.


종로3가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이박의 할아버지(72)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도심 한가운데인 덕분에 담배 9~10보루와 음료수 등을 합하면 하루에 3만원꼴은 번다고 했다. 그래봤자 한 달 수입은 100만원도 안된다. 그가 올해 낸 도로점용료와 시설이용료는 206만원. 두 달치 수입 전부를 웃돌았다. 


현재 서울시의회에는 민주통합당 오필근 의원 발의로 가판대 및 구두수선대 등의 도로점용료를 토지가격의 0.01%에서 0.005%로 인하해 주는 조례 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서울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보행권 확보와 배치되는 측면이 있는 데다 가판대 위치에 따라 점용료와 수익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보행권 확보 차원에서 보도 위에 있는 가판대의 자연 감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적응하지 못한 가판대 임차자가 임차권을 자진반납하거나 사망하면 새로운 임차자를 지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판대를 폐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판대 운영자가 60~70대의 노령층임을 감안할 때 가판대는 10~20년 후에 거의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된다. 

Posted by 정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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