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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에타, 청계천 상인의 '구원자'는 누구여야 했을까

살아가는 이야기

by 정소군 2012. 10. 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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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서울시청팀 정유진입니다. 얼마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즐겨 보지는 않습니다. 안 그래도 삶이 비극으로 넘쳐나는 거 잘 알고 있는데, 굳이 영화에서까지 비참한 현실과 인간 내면의 극단적인 감정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피에타>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아, 나는 좀 더 각성할 필요가 있구나' 라고요. 예쁘게 포장된 청계천 풍경에 익숙해진 저는 그새 잊고 살아왔나 봅니다. 불과 7~8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벌어졌던 절망과 자살의 행렬을 말입니다.

 

 영화는 지옥도와 다름없는 청계천 공구상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청계 상인들은 보험금을 타 빚을 갚기 위해 손가락, 발가락, 다리를 자릅니다.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한 스토리가 아닙니다. 실제 청계천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던 2002~2004년, 빚에 빚을 안고 거리로 내몰린 청계천 노점상과 영세상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퍼뜩 떠오른 유서가 있습니다. 2004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청계천 4가의 한 공구상가 주인이 16절지 도화지에 "서울특별시 시장님, 청계천 상인을 도우소서"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가게 천장에 목을 매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 유서의 글씨가 보여주는 절박함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57168)

 

 그는 청계천에서 29년동안 공구상가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가게 주변 교통난이 극심해지자 단골들까지 발길을 끊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서울시는 당시 청계천 복원공사 기간에 청계 4가 상인들의 생계를 위해 편도 2차로와 조업 주차공간을 확보해 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공구상가들은 구로공단 쪽으로 이전해야 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손님이 끊긴 빈 가게에 홀로 남아 대책없는 절망에 빠져야 했습니다.

 

 그는 두달 동안 월세 40만원을 내지 못했고, 세금이 500만원 가량 밀려 세무서에서 물건 압류 압력을 받던 상태였습니다. 점심 때 돈을 아끼기 위해 항상 라면만 먹던 그는, 가게 천장에 목을 매기 숨지기 전 날에는 차비가 없어 집에 가지 못하고 가게에서 밤을 새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어디 공구상가 뿐이었겠습니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2002년 청계천 복원공사를 이유로 청계천 일대 노점상들을 강제 철거하면서 그해 8월에는 노점상을 하던 박 모씨가 분신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명박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에 '풍물벼룩시장'을 만들고 청계천 노점상들을 수용키로 했지만, 뒤이어 취임한 오세훈 시장이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디자인플라자를 짓기로 하면서 이들은 다시 한번 쫓겨나 뿔뿔히 흩어져야 했습니다.

 

 청계천 상인들에게 '가나안땅'이 되어줄 것이라고 호언했던 가든파이브는 어떻구요. 청계천 복원공사로 생활터전을 잃게 된 상인6000여명은 이명박 시장의 약속을 믿고 대체 상가부지인 가든파이브에 이주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청계천 상인들에 한해 점포 한개당 특별분양가 7000만원을 약속받았죠. 그러나 실제 이주할 당시 평균 분양가는 약속했던 금액의 두배 이상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097명의 청계천 상인 중 가든파이브에 이주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입주한 상인들 마저도 분양비를 마련하느라 떠안은 빚부담은 커져가는데 장사가 되지 않아 상당수가 중도에 떠나갔다고 합니다.

 

 가든파이브에도 입주하지 못하고, 풍물시장에서도 쫓겨난 청계천 상인들은 지금 모두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영화에서처럼 서울 외곽의 변두리로 밀려나 비닐하우스에서 살거나, 트럭행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화 제목인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이라고 합니다. "서울특별시 시장님, 청계천 상인을 도우소서"란 유서를 남긴 공구상인의 절박했던 심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결국 그들을 구해야 했던 것은 신이 아니라, 바로 서울 시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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