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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을 말하지 말라

여행

by 정소군 2005. 6. 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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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포늪에서 무얼 보고 가셨습니까? 혹시 아마존 밀림 같은 늪지대를 상상하고 가셨다가 실망한 채 돌아가진 않으셨습니까? 언뜻 보면 저수지 같아 보이는 평범한 그 모습에 그러실 수도 있었겠네요.
 

그래도 조금 부지런한 분이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풍경을 놓치지 않으셨겠지요. 우포늪의 물안개는 1억4천만년전 물을 품고 가라앉은 땅이 수면위로 토해내는 신비스런 숨결입니다. 희뿌연 막이 드리워진 새벽의 원시늪. 그 깊숙한 바닥엔 태고의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당신은 우포늪에서 무얼 듣고 가셨습니까? 시끄러운 도시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뭘 또 들어야 하냐고요? 이곳에선 귀를 활짝 여셔야 합니다. 풀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벌들이 꽃잎에서 웽웽거리는 소리, 자맥질하는 물고기 첨벙 소리, 이름 모를 철새의 울음소리…. 그리고 고요한 자연의 말 없는 위로의 소리.
 

우포에는 늪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논갈이 하는 트랙터를 아장아장 따라다니며 곤충을 쪼아먹는 귀여운 황로가 있고, 아직 눈도 뜨지 못한 둥지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뱁새가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초등학교 문구점에서는 더 이상 잠자리채를 팔지 않게 됐지만, 이곳에는 지천이 잠자리와 나비떼입니다. 수면위엔 푸른 융단이 깔렸습니다. 사라져가는 가시연이 2m 가까이 되는 커다란 잎을 뽐내고, 노랑어리연의 샛노란 꽃도 수줍게 머리를 내밉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이 있습니다. 나룻배에 올라선 초로의 노인이 푸른 융단을 헤쳐가며 물고기와 고둥을 줍는 고즈넉한 풍경. 우포늪은 한때 2백만평에 달하던 자신의 몸을 농경지로 만들겠다고 3분의 1로 토막낸 인간마저도 그렇게 품안에 보듬어 줍니다.
 
그래서인가요. 이곳은 일출과 일몰의 햇살마저도 특별합니다. 태양이 어디에나 공평하단 말은 거짓인가 봅니다. 하긴 그렇겠지요. 꽃과 수풀과 새와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데. 태양마저 편애할 수밖에요. 갈대숲의 낭만이 노을 속에 뉘엿뉘엿 져가고, 백로의 흰 깃털도 노란 석양빛에 물들어 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촌부의 나룻배는 반짝이는 수면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우포늪을 방문하셨던 당신. 천의 얼굴을 가진 우포늪을 제대로 보고 들으셨습니까? 그 은밀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셨다면, 수고스럽겠지만 한번 더 먼걸음 하셔야겠습니다.

 

〈창녕|글 정유진기자 sogun77@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자연박물관' 우포늪은]


 

 

우포늪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하나의 전설이 내려온다. 우포늪 바닥에는 100살이 넘은 잉어가 살고 있는데, 보통 잉어와 달리 비늘이 검은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항상 몸을 숨겨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영험한 잉어는 우포에 관한 모든 것을 뒤에서 주관한다고 한다. 어부들은 잉어가 죽거나 다치는 날엔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여긴단다.

 

1억4천만년 동안 이어져온 우포이니 전설 한두개쯤 없으면 오히려 이상할 터. 우포늪은 빙하가 녹아 낙동강 물이 범람하면서 형성됐다. 이때 실려온 모래와 흙이 토평천 입구를 막아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면서 커다란 호수가 만들어졌던 것. 이렇게 만들어진 호수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의 우포늪이 됐다.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습지이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름은 소가 늪에 머리를 대고 물을 마시는 것 같다 해서 소벌, 비가 오면 주변의 나무들이 많이 떠내려온다 해서 나무벌, 모래가 많아서 모래벌, 크기가 작다고 해서 쪽지벌로 불렸다. 일제시대때 이를 한자로 바꿔놓은 것이 지금까지 굳어지게 됐다. 이 가운데 우포가 가장 넓고, 그 다음으로 큰 것이 왕버들 군락지이자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목포이다.
 
원래 우포늪 주변에는 크고 작은 늪들이 더 많았지만, 1997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무분별한 농경지 개간사업으로 과거의 장대한 모습을 많이 잃었다. 3분의 1밖에 남지 않은 우포늪의 현재 넓이가 70만평이라고 하니, 원래의 크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1998년 3월에는 람사협약(습지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등록되어 뒤늦게나마 세계적인 습지로 보호받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지금도 육지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우포늪이 빠르면 300년 후, 완전 육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우포늪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수질과 건강한 생태계 보호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우포늪 길잡이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구마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창녕IC에서 내려 우회전, 10분 정도 달리면 전망대로 가는 회룡마을 우포늪 진입로가 나온다. 창녕IC에서 반대로 좌회전하면 창녕읍 방향이 나온다. 창녕읍내를 지나 1080번 도로를 타고 15분쯤 달리면 왕버들 군락지인 목포늪으로 들어가는 장재마을 초입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창녕 시외버스 터미널 하차후 영신버스 터미널에서 한터·세진 가는 버스를 탄다. 우포늪 주차장까지 바로 갈 수 있는 버스는 1일 3회 운영된다. 우포 북쪽이나 목포쪽으로 진입하려면 대지·이방행 버스를 타고 장재리에서 내리면 된다. (사)푸른우포사람들(055-532-8989)이나 창녕환경운동연합(055-532-7856)에 미리 예약하면 생태가이드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물안개 저편에서 1,000가지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우포늪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모두 1,000여종. 특히 이곳에 살고 있는 430여종의 식물은 우리나라 전체 식물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 멸종 위기의 가시연, 통발 등 희귀한 식물도 관찰할 수 있다. 우포늪에서 볼 수 있는 새는 대략 145종이며, 물고기도 42종이 살고 있다. 삵, 고라니, 너구리, 다람쥐 등 다양한 포유류도 이곳에 터전을 마련해놓고 있다.


‘푸른우포 사람들’ 강병국 이사는 “홍콩의 마이포 습지 등 우포늪보다 2~3배 큰 습지들이 세계에는 많이 있지만, 그보다 적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생물종의 다양성으로 따지면 우포늪은 그 어느 습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우포늪의 환경자산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5백6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생물들은 우포늪의 사계를 철마다 매번 다른 옷으로 갈아입힌다. 특히 여름은 우포늪이 온통 눈부시게 싱그런 녹색으로 뒤덮이는 때. 지금 우포에 가면 물풀과 내버들이 풀밭인지 물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화려하게 펼쳐놓은 푸른 융단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멸종단계에 놓인 가시연
한때는 전국 각지에 많이 분포했으나 환경오염으로 이제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일본에선 이미 멸종단계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1속 1종밖에 없는 식물이다. 가시연은 생김새가 매우 독특하며 그 잎은 우리나라 식물 가운데 가장 크다. 큰 것은 지름이 2m를 넘는다. 가시연의 꽃은 낮에만 잠시 피었다가 금방 지기 때문에 지역 주민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고 한다. 목포늪 북쪽에 큰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사지포와 쪽지벌에서도 드물게 서식한다.

 

#마름모꼴 잎을 가진 마름
잎 모양이 마름모처럼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름을 비롯, 개구리밥·수련·네가래 등의 물풀은 기온이 높아지면 순식간에 넓은 면적의 수면을 덮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6~8월이 절정이다. 이들은 곤충과 물고기에게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할 뿐 아니라 오염된 물을 맑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벌레 잡아먹는 통발
새초롬한 꽃모양과 달리 ‘벌레잡이’ 식물이다. 이 식물에 발달해 있는 주머니 속으로 물속의 작은 곤충을 빨아들이고, 그 체액을 빨아먹는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어 역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우포늪과 연결된 수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줏빛 구름같은 꽃
자운영 꽃이 자줏빛 구름 같다고 해서 자운영이라 불린다. 농약을 많이 치지 않았던 예전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집단 군락지를 찾기가 무척 힘들다. 기침을 멎게 하고 상처가 났을 때 피를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어 민가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진흙속에 뿌리내리는 노랑어리연
여름이 되면 물위에 떠 있는 둥근 잎 사이로 긴 꽃대가 올라와 샛노란 꽃을 피운다. 줄기처럼 생긴 뿌리는 연꽃마냥 진흙속에서 옆으로 길게 뻗는다. 수면을 뒤덮은 푸른 잎과 그 사이로 머리를 내민 노란 꽃의 색채대비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텃새가 되어버린 왜가리
왜가리는 대표적인 여름 철새이지만, 우포늪 좋은 건 알아서 유독 이곳에선 눌러 앉아버렸다. 겨울철에 왜가리가 나무 위에 앉아있는 모습은 이제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라고 한다. 긴 다리는 얕은 늪을 쉽게 걸을 수 있으며, 긴 부리와 목으로 먹이를 잽싸게 낚아 올린다.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왜가리 서식지인 목포늪에서 자주 목격된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기 때문에 큰 짐승도 사냥할 수 있다. 가끔 한밤중에 왜가리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면, 수리부엉이가 사냥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풀위에 둥지 쌓는 쇠물닭
우포늪을 찾는 여름 철새. 새까만 몸에 끝이 노란 붉은색 부리를 가지고 있다. 생김새가 닭과 비슷하지만 실제 닭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갈대, 부들, 창포 같은 물풀이 많은 곳을 좋아해서 둥지도 물풀 가운데에 만들어 놓는다.

 

#여름밤 목청 높이는 청개구리
7월이 되면 우포늪은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 황소개구리가 우는 소리로 귀가 먹먹해진다. 특히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는 뱃고동 소리 같은 굵은 저음으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는 주로 밤에 우는 데 비해 황소개구리는 밤낮없이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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