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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엔 '짐승우리',유치장.구치소 -'인간이하'수감생활

사회

by 정소군 2003. 2. 1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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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유치장에서부터 구치소에 있는 지금까지 화장실을 한번도 가지 못한 채 1주일 넘도록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중인 김옥현씨(42.여)는 11일 취재차 면회간 기자에게 자신의 딱한 신세를 설명하려다 설움이 북받치는 듯 눈물부터 흘렸다. 김씨는 ”의료사고로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 됐다“며 병원 앞에서 분신자살하려다가 방화미수 혐의로 지난 4일 구속돼 송파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김씨는 유치장 생활 5일 동안 단 한번도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9일 성동구치소로 이송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중증 척추장애인인 김씨는 다리에 힘이 없어 좌변기밖에 쓸 수가 없지만 유치장과 구치소 화장실에는 쭈그려 앉는 변기밖에 없었다. 김씨는 ”하반신에 피가 안 통해 기저귀를 오래 차면 살이 문드러지는데도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사회의 편견에 고통받는 장애인들이 김씨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구치소나 유치장에서조차 불편한 시설과 부당한 대우로 ‘이중형벌’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 시설이 비장애인만을 기준으로 설치돼 있어 가장 기본적인 생리욕구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실태= 척추장애인인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는 2001년 10월 시위를 벌였다가 부과된 벌금 3백만원을 못내 4박5일 동안 갇혀 있었던 경찰서 유치장과 영등포구치소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박대표는 ”척추장애인은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 대부분 심한 변비 때문에 대변을 볼 때마다 관장을 해야 하지만 구금시설 안에서는 관장이 불가능해 아예 변을 보지 않도록 4박5일 동안 식사는 물론 물 한모금도 먹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애인 편의시설 촉진 시민연대의 김형수 연구원은 지난해 8월 시위에 참가했다가 연행돼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후 규정 때문에 사람이 아닌 ‘동물’ 취급을 당해야 했다.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인 김씨는 목발을 짚어야 다닐 수 있지만 목발이 흉기로 쓰일 수 있다며 경찰이 보관처리하는 바람에 동물처럼 기다시피 해 유치장에 들어갔다. 김씨는 ”경찰은 아침에 모든 수감자들에게 일어나 앉아 있도록 하면서 뇌성마비로 몸이 뒤틀려 앉아 있기가 거의 불가능한 장애인에게까지 똑같이 요구했다“며 몸서리쳤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이틀동안 구금된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김주현씨(28)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등이 휜 김씨는 딱딱한 바닥에서 자면 몸이 더욱 굳는 등 통증이 심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매트리스 등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양손이 불편해 젓가락질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김씨는 유치장 바닥에서 식사하려면 양반다리를 해야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 누운 채 그나마 포크조차 없어 거의 손으로 집어 식사해야 했다. 이들은 ”구금시설 안에서 장애인들이 최소한 생활에 불편은 겪지 않도록 여건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실상의 이중형벌이나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시설 법규 미비= 구금시설은 ‘유치장 설계 표준규칙’이나 행형법 등 관련 법령에 준해 설치되지만,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규정은 없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인권센터팀장은 ”구금시설도 ‘공공시설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장애인 편의증진법의 적용을 받지만 이 법이 은행이나 동사무소와 같은 이용시설 위주로 만들어진 법이어서 허점이 많다“며 ”구금시설 설치 관련 법령에 장애인을 위한 세부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가 전북 군산교도소 내에 장애인 전담시설을 짓고 있지만 수용인원은 고작 80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등록자 1백25만5천여명을 포함해 4백50만명으로, 전체 수형자 6만2천명을 기준으로 장애인 수형자를 추산할 때 턱없이 모자란다. 인권운동사랑방 유해정 상임활동가는 ”구금시설에서도 인간대우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교화와 재활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상희 변호사는 ”중증장애인은 도주 가능성이나 증거 인멸의 우려 등 구속사유를 충족시키기 힘들기 때문에 구속보다는 불구속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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