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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 내가 본 가장 파란 호수, 티티카카

여행

by 정소군 2017. 8. 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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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라산 두배 높이의 공중에 제주도 전체의 4배 면적에 달하는 호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름도 발랄한 티티카카 호수. 태양과 달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태양신이 최초의 잉카인을 호수에서 솟아나도록 명한 곳도 이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코파카바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티티카카 호수


 말만 호수이지, 그냥 바다같다. 바다처럼 파도가 출렁이고, 심지어 모래사장까지 있다. ‘태양의 섬’ 모래사장에서 텐트치고 선탠하는 외국인들도 봤다. 그 모래사장에 말똥과 개똥과 염소똥이 깨알같이 박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튼 티티카카 호수의 아름다움은 나의 빈약한 사진실력으로도 어느 정도 전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냥 구글 이미지를 찾아 보길 바란다. 새파란 하늘과 새파란 호수, 그리고 새하얀 뭉게구름, 그림 같은 곡선들. 태양과 달이 이곳에서 태어났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섬인 것만은 확실하다.


태양의 섬. 모래사장을 걸어가는 현지 꼬마들


 이곳은 라파스보다 고도가 더 높은데, 한동안 계속 코피가 나긴 했지만 다행히 몸이 적응을 했는지 고산증세는 많이 가라앉았다. 힘을 내서 일몰을 보기 위해 전망대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엄청나게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중간에 포기할까 했지만, ‘내가 또 여기 언제 와보겠냐’는 여행자 정신으로 악착같이 기어 올라갔다. 전망대 위에는 현지인들이 자그마한 매대를 놓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음료수, 장난감 자동차, 가짜 달러…. 음료수는 그렇다치지만, 힘들게 전망대까지 올라와서 누가 장난감 자동차나 가짜 달러를 살 것이라 기대하고 그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오늘 하루 얼마를 벌었을까. 내가 올라가자 혹시나 물건을 살까 싶어서 매대를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나의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내가 아무 물건을 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자 다시 바쁘게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태양의 섬. 코파카바나에서 배타고 들어간다.


 티티카카 호수는 볼리비아가 40%, 페루가 60%를 나눠서 관리하고 있는데, 사람들 말에 따르면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쪽이 더 아름답고 덜 상업화돼 있다고 한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좀 무뚝뚝한 경향이 있는데, 그래도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요란스런 호객행위도 잘 안하는 편이고, 가끔 가격을 높여 불러서 사기를 치려고 할 때도 있지만 들통이 나면 군소리 없이 잘 깎아주기도 한다. 

 배낭여행은 깎는 맛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호구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뭐, 어차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악착같이 깎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태양의 섬’ 트레킹하다가 만난 일본 여행객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너무 나태하고 안일하게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로 나이나 이름 따위는 묻지 않았기에 그 친구의 이름은 지금도 모른다. 나는 내 나이를 딱히 밝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므로, 상대방의 나이도 묻지 않는다. 그럼 상대방도 웬만하면 나에게 나이를 잘 묻지 않는다. 

 분명히 나보다 많이 어릴 것 같은 그 일본인 여성은 매우 귀엽고 착한 아이였다. 특히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는데, 필리핀에 영어 연수 갔을 때 한국 학생들과 많이 어울렸다고.(일본에서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학생들이 꽤 있나보다) 또 한국 드라마 팬이어서 저절로 한국어 공부가 됐다고 한다. 그 친구는 스페인어도 유창하게 잘했는데 따로 배운 건 아니고 여행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터득하게 됐다고. 한국어와 영어를 뒤섞어 가며 말하다가 갑자기 스페인어가 튀어나오는 등 우리의 대화는 엉망진창이었다. ㅎㅎㅎ 


태양의 섬.


 그 친구는 3년 동안 배낭여행 다닐 생각으로 1년 전 일본을 떠나, 북미 지역을 먼저 돈 후 남미로 내려왔다고 했다. 장기 여행자들은 정말 악착같이 예산을 아낀다. 그 아이는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마주치는 여행자마다 붙잡고 늘 숙소와 버스 티켓, 투어비 등을 얼마 냈냐고 물어보고 자신이 낸 액수와 비교해보곤 했는데, 나한테도 지금 너가 묵고 있는 호스텔은 얼마냐고 물었다.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 ‘La Cupula’는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대신, 물가가 싼 볼리비아인 걸 감안하면 무척 비싼 축이었다. 1박에 19달러라고 하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자기는 지금 10볼(2달러도 안됨)짜리 도미토리에 머물고 있다면서. 나의 선택을 합리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전망이 예뻐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강추되고 있는 곳”이라고 변명하니까, “방이나 호텔에서 보이는 전망이 중요해? 어차피 일어나면 방에서 나와 호텔 밖으로 돌아다닐꺼잖아”라고 했다;; 

 그 아이는 또 내가 손에 들고 다니며 먹고 있던 강냉이를 가리키며 그건 얼마냐고 물었다. 멋쩍어하며 10볼이라고 말하니 크게 웃으면서 “내 하루 숙소값이네”라고 말했다. 음.. 나는 장기여행자가 아니므로 너무 예산에 압박을 느끼며 고생하는 여행은 딱히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좀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2015.12)


내 숙소에서 찍은 풍경. 이만하면 19달러 낼만 하지 않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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