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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이 된 목사 ...강의석군과 학내 종교자유 외쳤던 류상태 前대광고 교목

사람들

by 정소군 2005. 4. 1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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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머리핀 노점상을 하고 있는 그에겐 잔인한 날이다. 서툰 손놀림으로나마 보기 좋게 머리핀을 진열했는데, 또다시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소중한 밑천이 젖을까 허둥지둥 다시 물건을 품는 그 사람. 손수 싸온 도시락을 까먹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대광고 전 교목실장이었던 류상태 목사(49)가 학교를 떠난 지도 반년이 흘렀다. 예배수업을 거부하며 학내 종교자유를 위해 단식농성했던 대광고 강의석군은 법대생이 됐고, 강군을 옹호하다 자의반 타의반 사표를 내야 했던 류목사는 목사직을 반납하고 노점상이 됐다.

 


#목사님, 500원짜리 머리핀을 팔다

현실은 소신껏 살려는 자에게 언제나 ‘생계’란 무기를 들이대며 가혹해지게 마련이다. 대학교 2학년인 아들, 고3인 딸. 목사부인은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자 ‘파출부’ 일을 나가야 했다. 교회 권사인 늙은 노모는, 그의 자랑이던 목사아들 때문에 몸져 누웠다. 곶감 빼먹듯 나날이 줄어드는 퇴직금. 얼마 안 남은 퇴직금으로 점포라도 열까 싶지만 망해버릴 경우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학교와 교회만 오가느라 세상물정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노점상이었다.

“처음엔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님 흉내를 내보자는 낭만적인 생각도 있었어요. 지금요? 처절하게 배울 뿐입니다.”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지난 20일 동안 노점상에서 판 건 겨우 10만원어치. 물건 원가에 차비, 점심값 빼고 나면 번 것도 아니다. 하도 안 팔리기에 큰맘 먹고 목 좋은 지하철역 앞으로 갔다가 험한 소리 들으며 쫓겨났다.

그래서 물건 가격을 내렸다. 그랬더니 이번엔 예전에 사갔던 초등학생 꼬마들이 와서 따진다. 1,000원에 사간 머리끈을 며칠후 500원에 팔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악착도 못떤다. 미안한 마음에 500원짜리 머리끈을 그냥 공짜로 준다. “제 버릇 어디 가나요. 훈장티를 못 벗어, 귀고리 구경하는 초등학생들한테 ‘어린 나이에 귀 뚫으면 안된다’고 훈계나 하고 말이죠. 허허.”

#노점상, 의석이와 함께 진실을 나누다

험난한 생활고는 학교를 그만둘 때부터, 아니 강의석군을 옹호하는 글을 학내 게시판에 올렸던 그 순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지금도 일말의 후회없이 단호했다. “그놈의 생계때문에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아무 말 못했었죠. 그래서 그동안 수많은 의석이들이 피해를 입어왔어요. 의석이의 단식은 비겁한 제 양심을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였던 겁니다. 사실 진작에 그랬어야 했죠.”

어려운 시기를 함께했던 제자이자 전우인 강군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강군이 고3 딸아이의 과외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며 류목사는 짧게 웃었다.

그는 강의석군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2년전부터 ‘불거토피아’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해오고 있다. 불거토피아란 ‘불로소득을 거부하자’는 뜻.

“3년전인가, 강남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뛰었어요. 전세 사는 사람들이 자살하고 그랬죠. 그런데도 부자동네 교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설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성도들에게 ‘아파트 투기하지 맙시다’라고 한마디만 해줘도 분명 뭔가 달라질텐데.” 그래서 그는 자신부터 실천해보자는 의미로 ▲마티즈 10년 타기 ▲큰 평수로 이사가지 않기 등 자신과의 약속을 카페에 공개하기도 했다. 노점상을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서약을 어기고 싶어도 어길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는 강의석군 사건 리포트와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담긴 책을 준비하고 있다. 류목사는 “책이 많이 팔려서 생계 부담을 덜었으면 하는 솔직한 심정도 없진 않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행동과 신념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점이다.

어느덧 비가 그쳤다. 아직도 꾸물꾸물한 하늘. 그러나 잠시라도 물건을 팔기 위해 그는 다시 좌판을 펼쳤다. “1년 전만해도 노점상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학교 안에서보다, 이 모진 거리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낍니다.” 힘든 나날 속에서도, 사람 좋아 보이는 따뜻한 웃음짓는 법만은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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