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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슬럼투어와 괭이부리마을

칼럼

by 정소군 2015. 7. 2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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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까지 상품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최근 인천 동구청이 괭이부리마을에 쪽방촌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오면 쪽방촌에서 1만원에 1박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 계획은 한 마디로 가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마치 ‘귀신의 집’ 공포체험이나 전주 한옥마을의 전통체험과 다를 바 없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이 계획은 여론의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다 전면 백지화됐다. 비난 받아 마땅한 사업이었다. ‘귀신의 집’에는 출구가 있고 한옥마을은 이미 역사의 일부가 된 과거완료형이지만, 괭이부리마을의 쪽방촌은 아직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한 주민 수백명이 거주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슬럼투어’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슬럼투어란 가이드의 인솔 하에 제3세계의 거대한 슬럼가를 둘러보는 ‘체험 여행상품’이다. 인도 다라비 마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호싱야,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 등이 ‘인기있는’ 슬럼투어 장소로 꼽힌다. 보다 생생한 체험을 위해 슬럼가 주민의 집에서 하룻밤 자보기, 슬럼가 공터에서 축구해보기 등 세부적인 프로그램이 제공되기도 한다. 브라질의 경우 매년 5만여명, 다라비 마을은 해마다 2만여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슬럼투어의 유래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시대인 1880년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런던 귀족들이 자선과 호기심을 목적으로 경찰의 호위 아래 슬럼가를 둘러보던 것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어찌나 호기심이 대단했던지 런던과 뉴욕의 슬럼가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열망에 불탔다. 곧 뉴욕에는 이들을 고객으로 붙잡기 위한 여행사가 등장했고, 슬럼 가이드책자까지 제작됐다.


 아마 슬럼투어를 신청하는 여행자들 역시 당시 런던 귀족들처럼 호기심과 자선이 뒤섞인 마음일 것이다.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슬럼투어가 가진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9년 전 인도 다라비 마을에 처음으로 생긴 슬럼투어 여행사 ‘리얼리티 투어’는 수익의 80%를 다라비 마을을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슬럼투어가 제3세계의 빈곤 문제를 환기시키는 효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1992년 리우회의가 열렸을 때 브라질 정부는 국제사회에 좋은 이미지만 선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호싱야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러자 세계 각지에서 온 환경·인권운동가들은 민간 여행사에 개별적으로 부탁해 자신들을 호싱야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의 호싱야 슬럼투어로 확대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춰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앞장서 빈곤 여행상품을 기획한 인천 동구청의 경우는 더욱 괴상한 사례다.

 그러나 이 모든 긍정적 효과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슬럼투어는 결코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케냐 빈민가 키베라에서 자란 케네디 오데데가 자신의 마을에서 슬럼투어 여행객들과 처음 마주친 것은 그녀가 16살 때였다. 백인들은 그녀를 보더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오데데는 이틀 동안 굶주린 상태였다. 또 다른 여행객들은 병원에 가지 못해 집에서 힘겹게 출산을 하고 있는 젊은 소녀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슬럼투어가 ‘빈곤 포르노’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키베라를 둘러본 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여행객들은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데데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우리들은 마치 동물원 안에 갇힌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빈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슬럼투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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