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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의 사이시옷] 각자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혼밥'의 시대

칼럼

by 정소군 2017. 8. 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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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어머니는 ‘독거 장년’인 나의 건강이 늘 걱정인 모양이다. “혼자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냐, 혼자 살아도 밥 챙겨먹기 귀찮아하면 안된다.”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어머니는 잠시 멈칫한 후 다시 말씀하셨다. “외할머니가 영양실조셨다.” 


외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처음 몸에 이상이 나타났을 때 서울의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오셨는데 그때 영양불균형, 즉 영양실조 상태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표정에 스친 것은 회한이었다.


내 기억 속 외할머니는 항상 활기가 넘쳤다. 여름방학 때 시골에 놀러가면 바지를 둥둥 걷고 호숫가에 들어가 손주들에게 먹일 고둥을 한아름 잡아오기도 했다.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발견했을 때 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외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떼냈다. 자식들 모두 도시로 나간 후 홀로 시골집을 지키면서도 그는 늘 씩씩했다.


그런 외할머니가 영양실조였다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졌다. 영양실조를 겪는 저소득층 어린이나 시골 독거노인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통계 기사를 내 손으로 쓰면서도 그건 일부 소외계층의 문제라고 여겼다. 지금은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버려지는 음식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더 큰 고민인 시대 아닌가. 그러나 이 ‘풍요의 시대’에도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 과잉’의 시대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로운 ‘혼밥’이 생존의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들이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손주들이 때 되면 놀러갔는데도, 영양불균형 상태가 됐던 내 외할머니처럼. 그것은 아마도 자식들을 도시로 떠나보낸 이 시대 독거노인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sns에서 화제가 된 혼밥 삼겹살 식당

사실 ‘혼밥’은 이미 하나의 사회·문화현상이 된지 오래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서울 홍대 앞이나 강남 같이 트렌드에 민감한 지역에는 혼밥족을 겨냥한 식당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홀로족’이라고 밝힌 2030 성인 남녀의 86% 가량이 혼밥혼술 트렌드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이유는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어서.’ 


정도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혼밥, 혼술은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인이 혼자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회 문화의 중심이 단체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 단서를 달았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성숙해진 것이 맞지만, 사회 시스템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말이다.


어머니의 걱정과 달리, 사실 나는 ‘프로혼밥러’다. 인터넷에 우스개처럼 떠도는 혼밥레벨 측정기준에 따르면 최고등급에 속할 만큼 익숙하다. ‘혼밥을 할 수밖에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혼밥이 뭔 대수인가’ 싶은 쪽이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도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13년 전, 서울의 한 대학을 출입처로 두고 취재할 때의 일이다. 일을 하다 점심시간을 놓쳐서 조금 늦게 혼자 학생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그날 메뉴도 기억난다. 닭백숙. 닭 한마리가 오롯이 누워있는 걸 보고 학생식당의 수준에 감탄하며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였다. 


“학생, 미안해. 내가 아무래도 시간이 다 돼서 먼저 가봐야할 것 같아. 맛있게 먹어.” 어디선가 들려온 말에 고개를 들었다. 나를 학생으로 착각하신 듯한 그 분은 내 대각선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였다.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청소노동자 유니폼 같은 것을 입고 계셨던 것 같다. 알고보니 밥을 다 드시고도 내가 혹시 빈 테이블에 혼자 남겨지면 민망해할까봐, 생판 처음보는 나를 위해 계속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켜주셨던 것이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나는 혼밥이 아무렇지 않다. 그래도 가끔 이런 궁금증이 든다. 그 아주머니는 요새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보면 그때처럼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실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혼밥이 외로움과 궁상의 상징이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TV에는 여유롭게 혼밥을 즐기는 화려한 싱글라이프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혼밥의 비극은 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 밥 먹을 시간도, 돈도 없어 편의점에서 혼자 한끼를 때우는 취준생들. 혼자 밥을 골고루 챙겨먹을 의욕도, 여유도 없는 독거노인들. ‘3포세대’의 비혼과 이혼으로 1인가구가 될 수 밖에 없는 혼밥족들. 마치 혼자만의 힐링타임인 ‘혼술’을 즐기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던 드라마 <혼술남녀>의 이면에는 한끼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을 만큼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연출의 비극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각자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혼밥의 시대’이다.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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