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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의 사이시옷]외면과 동정 너머

칼럼

by 정소군 2017. 8. 1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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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된 후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순간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가정을 취재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어느 날부턴가 입안에서 이유없이 계속 피가 나는데도, 병원 갈 시간마저 아까웠던 그는 피비린내를 없애려 껌을 씹어가며 일했다. 몸이 건강하지 않은 딸과 아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버지마저 구강암으로 쓰러지면서 집안은 손쓸 틈도 없이 무너졌다. 슈퍼마켓은 문을 닫았고, 아파트와 가재도구는 몽땅 경매로 넘어갔다. 경매집행관이 들이닥친 날, 오갈 데 없던 다섯 가족은 유일하게 남은 1t 트럭 좁은 짐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마저도 이미 압류된 상태였지만. 그들은 그곳에 웅크린 채 서로의 온기만으로 추운 겨울 밤을 지새며 넉달을 버텼다.


다행히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마음 따뜻한 독자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했다. 덕분에 트럭 짐칸에서 탈출해 조그마한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하게 된 그들은 ‘이제 (글자 그대로)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며 “집에 놀러오라”고 초대했다. 그냥 하는 인사치레라 여겨 “언제 한 번 들르겠다”고만 대답했는데, 두어 차례 더 전화가 왔다.


‘집들이’ 가는 길에 산 과일을 방 안에 어색하게 내려놓고 가족들과 빙 둘러앉았다. 방이 휑했다. 그럴 수밖에. “가재도구가 부족해서 불편하시겠어요.” 내 시선을 따라 새삼스레 방을 훑어보던 아버님은 잠시 말이 없다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우리에게 없는 것들만 찾아내서 보는 걸까요?” 예상치 못한 의외의 대답이었다. “몇주 전까지 발 뻗을 공간조차 없던 우리 가족이 집을 갖게 됐어요. 기적이 일어난 건데,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우리에게 없는 TV와 컴퓨터 같은 것들만 찾아보려 하네요.”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 같다. “이렇게 된 후부터 친척이나 지인들이 연락을 피해요. 어쩌다 통화할 때도 난처해하는 게 느껴지고. 다들 어려운 형편인데 제가 도와달라고 할까봐 부담스러운가봐요. 그런 걸 바라고 연락한 게 아닌데도….”


그는 극구 사양하는 나를 데리고 나가 분식집에서 밥을 사줬다. “성금이 아직 좀 남아있어요. 소중하게 아껴 쓸 거지만, 한 번쯤 이렇게 사 먹는 건 (성금 보내주신 분들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어요. 사실 이 분식집 사장님이 저 트럭에서 살 때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한 번이라도 돈 내서 팔아 드려야죠.”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이 난다. “사장님, 오늘은 저 사 먹으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던 그분의 목소리, 그리고 구강암 수술 후 약간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입가에 떠나지 않고 머물던 어렴풋한 미소.


돌아오는 길 내내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사람의 정체성은 수없이 많은 요소들로 구성돼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른 모든 요소들을 압도해버리고 마는 어떤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가난’ 같은 것. 가난이 끼어드는 순간, 다른 모든 요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는 자립심과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으며,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지만, 병으로 쓰러지고 집이 경매에 넘어간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자신일 수 없게 됐다.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와 시선 속에서 그는 외면 혹은 동정, 둘 중 하나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빈곤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도 싸워야 했다. 나를 집에 초대하고, 자신에게 도움을 준 분식집 주인에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보답을 하려고 했던 것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회복하고 싶은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쉽게 외면하거나 쉽게 동정한다. 때론 빈곤층에게 복지혜택을 늘리면 근로의지를 저해할 수 있다며 쉽게 타자화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 가족도 예기치 못한 겹겹의 불행이 닥쳐오기 전까지는 중산층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빈곤층과 중산층 사이에 놓인 벽이 베니어합판 한 장만큼이나 얇은 ‘위험사회’에서 누가 누굴 외면하고 동정할 수 있을까.


내년 4인 가구의 최저생계급여가 월 135만5761원으로 정해졌다. 올해보다 1.16% 오른 것으로, 물가상승률 전망치(1.9%)보다도 낮은 인상폭이다. 교육·주거·의료급여는 따로 준다고 하지만, 모자라는 부족분과 나머지 식료품비, 교통비, 문화생활비 등도 다 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4인 가구가 최소한도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어느날 갑자기 실직하거나 질병에 걸리더라도 방 한 칸 없이 거리로 내쫓기지 않고, 누군가의 동정에 기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빈곤층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혹시 모를 나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 곧 나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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