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 초읽기…진퇴양난 두 남녀
ㆍ유로존 재무장관회의 결렬…유로존·그리스 ‘파국’ 치달아
ㆍ메르켈 독일 총리·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해법 고뇌’
그리스 사태를 풀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던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가 18일 결렬되면서 상황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22일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긴급소집될 예정이지만,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유로존은 “공은 그리스로 넘어갔다”는 입장이나 그리스가 양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17일 그리스 의회 앞에 모인 청년들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게 더욱 강경한 태도를 요구했다. 한 청년은 “혼돈과 긴축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혼돈을 택하겠다. 우리에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유로화 계속 쓸까?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19일 거리에 설치된 은행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스 은행들은 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를 겪고 있다. 아테네 _ AP연합뉴스
아마 지금 가장 잠을 못 이룰 두 사람은 EU를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유로 통화를 책임진 유럽중앙은행(ECB)의 수장 마리오 드라기일 것이다. 독일을 넘어 유럽의 무터(엄마)가 된 메르켈의 리더십은 집권 이래 가장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는 “유로존의 실패는 유럽(통합)의 실패”라며 2010년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그리스와 포르투갈에 구제금융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메르켈의 운신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설문결과에 따르면 독일인 58%는 그리스에 양보하느니 차라리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낫다고 답했다. 강경파들은 “그리스에 양보할 경우 유로존 내 작은 국가들이 큰 국가를 협박해서 이익을 얻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며 그를 압박한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메르켈은 특유의 신중함으로 유명하지만, 그리스 사태는 아무리 신중하게 고민해도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드라기 ECB 총재의 행보도 주목된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모두가 메르켈만 보고 있으나 사실 지금 가장 중요한 인물은 드라기”라고 보도했다. 드라기는 이제까지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 정상들이 해결해야 할 정치 문제”라면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가 점점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가 30일 만기가 돌아오는 국제통화기금(IMF) 부채 16억유로를 갚지 못하면 ECB는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프로그램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ECB 규정에 따르면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의 국가에는 자금 지원을 중단해야 하지만 이제까지 드라기는 독일 중앙은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예외적으로 830억유로 이상을 지원해 왔다. ECB는 그리스의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이번 한 주에만 30억유로 이상이 빠져나가자 19일 긴급회의를 열어 ELA 규모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면 더 이상 돈을 줄 명분이 없다. 계속 자금을 지원했다가는 다른 유로존 정상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고, 그렇다고 ECB마저 자금지원을 중단하면 그렉시트를 피할 수 없다. 드라기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만약 22일 긴급 정상회담에서도 유로존이 구제금융 연장 합의에 실패하면, 그리스가 자본통제 카드를 빼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3년 키프로스도 구제금융 협상 때 뱅크런을 막기 위해 은행권 업무를 중단한 뒤 기습적으로 국외송금·무역결제대금 지급·예금인출을 제한한 바 있다. 자본통제는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고 경제회복을 더욱 더디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구제금융 연장 협상이 실패할 경우 결국 그리스가 유동성 부족으로 그렉시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