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힙합 래퍼는 왜 테러단체 참수범이 됐을까
전도유망했던 20대 힙합 래퍼는 어쩌다가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참수범’이 된 것일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방황을 노래했던 그의 랩은 최근까지도 영국의 일부 젊은 팬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회자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음악 대신 칼을 빼든 그는 이제 영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이 가장 잡고 싶어하는 테러범이 됐다.
인디펜던스 등 영국 언론들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의 참수 동영상에 등장했던 복면을 쓴 영국인 ‘존’이 20대 힙합 래퍼 압델 마제드-압델 배리(24·사진)로 추정된다고 24일 보도했다. 이집트계 영국인인 배리는 지난해 시리아로 건너가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 현재 영국 정보당국과 미 연방수사국(FBI)은 배리를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가택 수색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인 ‘존’ 추정 인물, 알 카에다 연루 부친 체포 후 IS로
‘L 지니(L Jinny)’ 혹은 ‘작사가 진(Lyricist Jinn)’이란 예명으로 활동한 배리는 2012년 싱글 앨범이 BBC 라디오에 소개됐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런던에서 17억원짜리 집에 살며 비교적 평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초창기 그의 노래는 여느 20대 래퍼들처럼 삶과 폭력, 마약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가득했다. “축복받은 삶이지만, 여전히 나는 평안을 찾을 수 없어”라며 불안한 미래를 랩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의 노랫말은 180도 바뀌어 음주, 클럽 문화, 마약 등 방탕하고 세속적인 삶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는 “알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며 시리아로 향했다.
영국에서 함께 살던 아버지가 1998년 탄자니아·케냐 미 대사관 폭탄테러 연루혐의로 2012년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된 후 큰 심리적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오사마 빈라덴이 수단·소말리아에 머물 때 알카에다에 관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올 초 그는 트위터에 참수당한 사람의 머리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가장 최근인 지난 3월 올린 동영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랩을 한다. “그들이 아버지를 데려갔던 날, 난 경찰을 죽이기로 맹세했어. 내 형제들을 욕보여봐. 네 몸을 온통 총알로 채워주겠어.”
현재 IS에는 배리 외에도 영국 출신 지하디스트가 500여명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정보기관 MI5가 2008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평범해 보이던 영국 이민자 가정 2·3세들이 갑자기 극단 테러리스트로 돌변하는 과정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없었다. 이들 대다수는 오히려 엄격한 이슬람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테러조직 가입 전까지는 규칙적으로 모스크에 가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마존닷컴으로 급하게 코란을 구매한 사람도 있었다.
이민자 가정 자녀들, 사회 동화 못해 쉽게 급진주의 현혹
영국 무슬림군인협회의 아프잘 아민 회장은 “오늘날 영국의 ‘지하디스트 세대’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진정한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이민자 가정 자녀로만 취급받았다”며 “게다가 영국의 이슬람 사원조차 (영국 문화에서 자라난) 이들의 눈높이에서 접근하는 데 실패했다”고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결국 이들은 영국에도 동화되지 못하고 부모 세대의 온건 이슬람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소외돼 있다가 IS가 표방하는 과격한 급진주의 구호에 쉽게 현혹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 알렉스 매시는 “영국 정부는 ‘영국인 지하디스트’를 막겠다며 시민권 박탈 등의 강경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이들이 영국 사회에 가진 불만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리아의 알카에다 계열 반군인 알누스라 전선에 납치됐던 또다른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피터 테오 커티스(45)는 이날 카타르 정부의 중재로 억류 2년여 만에 무사히 석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