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남미“월드컵이 밥 먹여주냐” 브라질 국민들 끓는다
“경기장 대신 학교 지어라” “우리는 축구공을 뜯어먹고 살 수 없다!” “네이마르(브라질의 축구선수)보다 교사가 훨씬 중요하다!”
2007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됐을 때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로 넘쳤던 상파울루 거리는 지난 9일 월드컵 반대 시위대의 구호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쏜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그득했다. 남미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에서 월드컵 기간에 응원단의 발이 돼줘야 할 지하철은 기관사들의 파업으로 멈출 위기에 놓여 있다.
상파울루 등 지하철 노조 “임금 인상” 외치며 거리로
2014년 월드컵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축구 열정을 지닌 브라질 국민들이 월드컵을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브라질 상파울루 경찰이 9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상파울루 지하철 노조원들과 아나로사 지하철역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파울루 지하철 노조는 이날 파업을 잠정 중단했으나 월드컵 개막일인 12일 다시 파업을 재개할지 여부를 두고 11일 찬반투표를 할 예정이다. 상파울루 _ AP연합뉴스
브라질은 월드컵 개최를 위해 경기장 건설 등에 110억달러(약 11조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이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취합해 보니 이번 월드컵이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에 미칠 영향은 0.2%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 경제가 급격히 악화된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7.5%에서 지난해 2.3%로 뚝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은 브라질의 올해 성장률이 1.8%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월드컵을 여는데도 성장률이 오히려 더 떨어진다는 뜻이다.
GDP 효과 고작 0.2%로…
가시적인 경제효과가 미미하더라도 국가 이미지 제고와 같이 계량할 수 없는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브라질의 준비 부족과 불안한 치안은 반대 결과를 낳고 있다. 브라질의 축구영웅 호나우두는 지난달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장 건설조차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된 게 하나도 없어 내 간담이 다 서늘해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을 앞두고 치안을 강화하겠다면서 빈민가 근처에 탱크까지 주둔시켰지만, 무고한 청년들이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월드컵 반대 시위에 기름만 끼얹는 꼴이 됐다.
누적된 경제 격차와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려온 시민들은 “경기장 지을 돈을 우리에게 쓰라”며 거리로 나섰다. 상파울루 등의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빌딩 벽 곳곳에는 “엿먹어라, 월드컵!” 같은 낙서들이 쓰여졌다. 월드컵 경기 주최 도시로 선정됐을 때 축제를 벌였던 북서부 아마존의 도시 마나우스 주민들도 이제는 “불과 몇m 떨어진 옆동네인 알보라다에는 제대로 된 하수처리시설도 없는데, 이런 비싸고 호화로운 경기장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라며 분노를 표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교사, 버스 운전사, 미화원, 지하철 기관사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대거 거리로 뛰쳐나왔다. 교사들은 “마라카낭 경기장 지을 돈으로 학교 200개를 건설할 수 있었다”며 반발했다.
특히 12%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5~9일 닷새간 파업을 벌인 상파울루의 지하철 노조는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12일 파업 재개 여부를 놓고 11일 노조원 투표를 벌이겠다고 밝혔으며, 리우데자네이루 지하철 노조도 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이 월드컵 기간 중 파업에 돌입할 경우 응원단이나 관광객은 극심한 교통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월드컵을 통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으려 했던 브라질 정부는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 국민들의 여론이 호전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대학생인 펠리페 메스키타는 “브라질 대표팀을 응원하고 축구를 사랑하지만, 정부의 월드컵 정책과 그것은 별개”라고 가디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