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남북 아메리카

미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

정소군 2014. 11. 16. 13:00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9·11 기념관 앞에는 지난 12일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지난 5월 문을 연 지 6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념관은 단체 관람 학생들부터 미 전역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신 스캐너 등 공항 검색을 방불케 하는 까다로운 몸수색 절차를 거쳐야 했다. 9·11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열기와 함께 아직도 가시지 않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린 무슬림이자 미국인… 왜 하나만 택하라 하나요”


기념관 안에서는 9·11 당시의 상황을 담은 ‘공격 받은 미국’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이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자 앞에 앉은 노부인도, 옆에 앉은 젊은 여성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내가 전시 대통령(president of war)이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지만, 결국 나는 그렇게 돼야 했다”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마지막 멘트는 최근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과 겹쳐졌다. 


미국 뉴욕대에 위치한 이슬람센터에서 지난 10일 무슬림 학생들이 금식을 마친 후 메카 방향을 향해 저녁 기도를 올리고 있다.


기념관 앞 그라운드 제로에서 만난 미국 시민 밥 카루소(75)는 “9·11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면서 “IS라는 새로운 테러 단체가 나타난 지금 미국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분명히 조만간 또다시 무슨 사건(테러)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도 표출했다. 


그는 “아무리 대다수 무슬림들은 선량하다고 해도 (무슬림들이)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며 “전세계 무슬림 10억명 중 1%만 테러리스트여도 엄청난 숫자”라고 말했다.     


‘이슬람 포비아’ 다시 고개… 상처받는 뉴욕 이민 2세들


IS 사태를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이슬람 포비아’ 속에서 미국의 무슬림들은 ‘미국인’과 ‘무슬림’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원치 않은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 10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함께 뉴욕대(NYU) 안에 있는 이슬람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뉴욕대생 뿐 아니라 뉴욕 내의 무슬림들을 위한 모스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의 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인 칼리드 라티프는 “뉴욕에서 결성된 ‘우리는 무슬림이 싫다’라는 단체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면서 “(교회와 달리) 모스크는 건설하려면 까다로운 허가절차를 거쳐야 하고, 무슬림들은 미 안보당국의 프로파일링에 올라 각종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실은 미국에서 태어난 무슬림 2세들의 고민을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민 2세이자 뉴욕대 3학년생인 산지다 초더리(20)는 친구들과 “우리는 과연 무슬림인가, 미국인인가”를 두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는 결국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미국인’”이라는 것이었다. 


초더리는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없듯이 우리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초더리는 이날도 이슬람 율법에 따라 금식을 한 후 뉴욕대 안의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었다.


9·11기념관 앞 시민들 “대다수 선량해도 무슬림은 위험”


미국의 무슬림들은 ‘이슬람 포비아’를 불식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회 참여 활동들을 벌이고 있다. 이맘인 라티프는 “미디어들이 극단적인 내용만 전하면서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협력과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보도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 종교 공동체들이 인신매매 금지 운동이나 자연재해 복구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문화·종교간 협력을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그는 뉴욕대 안에 있는 유대교 지도자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이 이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4일 미 워싱턴 국립성당은 종교간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해 처음으로 무슬림들과 함께 공동 기도회를 열었다. 하지만 사전에 행사 일정이 공개되자마자 수많은 항의 전화가 쏟아져 주최측은 행사 규모를 축소하고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기도회 도중 한 중년 여성이 갑자기 일어나 “미국은 기독교도의 나라”라며 “무슬림들은 모두 꺼져라”라고 소리를 질러 행사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