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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 ‘옐런 체제’ 출범] 떠나는 버냉키 임기 8년 성공과 실패

정소군 2014. 1. 29. 23:30

ㆍ모두 3000조원 유례없는 ‘돈 풀기’ 단행

ㆍ금융위기 막아냈지만 경제 불평등 심화

“거두기는 했는데, 뿌린 만큼은 아니었다.” 

28~29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끝으로 물러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임기 8년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버냉키 의장은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말부터 ‘헬리콥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돈을 뿌렸다. 금리는 5년 넘게 제로금리 수준에 묶어놓았고, 경기부양을 위해 총 3조달러(약 3000조원)가 넘는 돈을 시장에 풀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통화 완화정책으로, 한국 1년 예산의 10배에 이르는 규모다. 애틀란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빌 해크니 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나는 그때 버냉키 의장이 미쳤다고 여겼다. 어마어마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공포감으로 패닉에 빠진 세계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주가는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집값도 2006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가 퇴임 직전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고 떠나는 것도, 어느 정도 경제가 회복됐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통화정책을 과감하게 단행해 세계를 ‘2차 대공황’의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버냉키 의장의 업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규모에 비해 성과는 빈약했다”고 평가했다. 주가는 올랐지만 실제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고, 경기부양 정책에 힘입어 기업들의 수익은 회복됐지만 투자는 늘지 않았다. 반면 경제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초저금리 덕분에 활황을 맞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미국의 소득 상위 7%의 재산을 28% 가까이 불려놓았다. 반면 나머지 93%의 재산은 오히려 4% 감소했다. 실업률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지만, 이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버냉키는 자신의 정책이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에 대해 “초저금리는 일자리 창출을 확대했고, 자동차 대출 비용부담을 줄여줬으며, 주택가격을 회복시키는 등 모두에게 득이 됐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미국의 연간 통계는 경제적 불평등이 해마다 더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남긴 유산을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금융정책의 결과는 긴 시간을 두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출구전략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에 대한 평가는 보다 후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양적완화 맹신론자’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세계 경제 최악의 시기를 헤쳐나온 그가 미 연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