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넴초프,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의 희생양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피살당한지 나흘이 흐른 4일 아직까지도 범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누가 방아쇠를 당겼든 간에, 넴초프가 러시아에 광풍처럼 불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의 희생양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구소련의 향수에 젖어있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서 스탈린을 떠올리며 ‘강한 러시아’의 부활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처단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푸틴의 독재를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반대를 주장했던 넴초프는 이들에게 ‘제5열(적과 내통하는 자)’일 뿐이었다. 자신의 정권 연장을 위해 극우 민족주의 단체를 조직하고 적극 이용해 온 푸틴 대통령이 암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넴초프의 측근이었던 블라디미르 리즈코프는 “국영 TV들은 넴초프를 ‘반역자’로 명명하며 그에 대한 폭력을 조장했다”면서 “지금 러시아에서는 재향군인단체부터 스포츠클럽까지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모든 단체들이 ‘반역자’를 처단하겠다며 준동하고 있다”고 2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러시아에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직후였다. 오렌지 혁명에 충격을 받은 푸틴은 자신의 정권을 지지해 줄 청년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나시’(러시아어로 ‘우리의 것’이란 뜻)라는 이름의 애국청년단을 조직했다. 17~25세 청년들로 구성된 이들은 푸틴의 ‘친위대’로 불렸고, 2007년 12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조직으로 확장됐다. 2011년 3연임을 시도하던 푸틴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강한 시민 저항에 부딪히자, 전면에 나서 시위대와 대리전을 치뤘던 것도 바로 ‘나시’였다. 푸틴은 당시 시위대를 “서방의 조종을 받는 무리”로 매도하면서, 친정부 단체들을 결속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마이단 혁명’이 일어난 후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본격화되자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은 더욱 통제 불가능한 위험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넴초프 암살 1주일 전 모스크바에서는 극우민족주의 단체들이 모두 모여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위대한 러시아를 위해 성전을 치르자” “제5열을 처단하자”고 외쳤다. 푸틴 역시 대중연설에서 크림반도 합병에 반대하는 자들을 “매국노” “제5열”이라고 거침없이 부르며 극우민족주의를 부추겼다.
일각에서는 푸틴이 무자비한 숙청과 공포정치를 일삼았던 스탈린식 독재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실제 스탈린의 정치범 탄압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운영해왔던 ‘수용소군도 박물관’을 정부가 강압적으로 인수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BBC방송이 3일 보도했다. 이 수용소군도는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을 펼쳤던 정치인 등을 잡아가뒀던 곳이다. 박물관 관계자인 빅토르 시미로프는 “스탈린의 과오를 지우기 위한 시도”라며 “스탈린 시절의 강한 국가를 그리워하는 민족주의자들의 향수와 함께 전체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푸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방의 경제제재, 유가하락, 루블화 추락이 맞물리면서 러시아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푸틴이 방조하는 극우민족주의자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넴초프 암살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