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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폭동지역에 금주령… 이주민 차별 ‘눈 가리고 아웅’

정소군 2013. 12. 10. 21:30

싱가포르에서 44년 만에 일어난 폭동의 원인을 놓고, 곪을 대로 곪은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싱가포르 정부가 가장 먼저 내놓은 대책은 ‘치안국가’라는 별명에 걸맞게도 폭동 지역에 ‘금주령’을 내린 것이었다. 


10일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폭동이 일어난 ‘리틀 인디아’ 지역 내 레이스코스 로드 일대에 주류 판매 및 음주가 전면 금지되는 조치가 이번 주말부터 적용된다고 보도했다. “폭동의 원인을 섣불리 발표하긴 이르다”는 공식 발표와 달리 정부가 사실상 음주를 원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폭동의 시발점이 된 버스 사고로 숨진 인도계 남성과 폭동 가담자 대부분이 음주 상태였다는 것이 이유다. 금주령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지역과 시간대는 추후 경찰이 발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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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와란 제2내무장관은 폭동이 일어난 다음날인 9일 기자들과 만나 “음주가 폭동을 일으킨 주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금주령은 사태 안정화를 위한 우리의 첫 번째 조치”라고 말했다. 폭동 가담자들이 실제 만취 상태였느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루이툭유(呂德耀) 교통부 장관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경찰에 구금된 가담자 대부분이 술을 마신 상태였고, 폭동 당시 맥주병과 캔이 시위 도구로 쓰인 것으로 볼 때 음주가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장즈셴(張志賢) 부총리는 이번 폭동을 계기로 인터넷에 이민자 혐오 발언이 퍼지자 종족 간 갈등이라고 억측하거나 갈등을 선동하지 말고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공식 발표와 달리 정부가 취한 조치야말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루이 장관은 “앞으로 이주노동자가 많이 모이는 축제 기간이나 명절 때 경찰 경비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이주노동자가 폭력과 범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실제 그들은 이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고용주의 괴롭힘과 부당노동 조건도 묵묵히 참아내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번 사건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