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빈집', 홈리스 숫자의 3배
유럽에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집이 유럽 전역의 홈리스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부동산 버블 시기에 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지어진 집들이다. 홈리스 단체들은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집이 없는 사람보다 사람이 없는 집이 더 많다니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분노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럽에는 모두 1100만채의 집들이 비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보도했다. 이는 유럽 지역 홈리스 410만명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나라별로 보면 스페인 340만채 이상,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200만채, 독일은 180만채가 빈 집인 것으로 조사됐다.
Scandal of Europe's 11m empty homes /가디언
이들 상당수는 2004~2008년 거품경제 시기에 거주용이 아닌 투자용으로 거대한 휴양 리조트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금융위기 이후 집이 은행에 넘어갔거나, 집값이 다시 올라 투자수익을 얻고 되팔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5~6년 가까이 집을 빈 채로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짓다만 건물 수십만채는 공급 초과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다시 허무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홈리스 문제는 은행에 집이 압류돼 강제퇴거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중증 척추 장애인인 80대 노부부가 1942년부터 살아온 집이 은행에 넘어가면서 강제 퇴거 당하자 마을 주민 수백명이 몰려나와 항의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유럽홈리스단체연합의 프릭 스피네베인 국장은 “집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그렇게 많은 집들을 빈 채로 놔두다니, 이는 매우 부도덕한 일”이라며 “그 중 절반만 쓰더라도 유럽의 홈리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빈 집 문제가 가장 심각한 스페인에서는 지방 의회별로 대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역에 있는 일부 도시들은 은행에 압류된 집을 2년 이상 비워둘 경우 10만유로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바르셀로나 북쪽에 위치한 테라사 의회도 주택 5000여채를 압류한 채 계속 비워두고 있는 은행에 세입자를 들여놓지 않을 경우 이를 공공주택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공식서한을 발송했다.
홈리스 활동가인 데이비드 아일랜드는 “1100만 여채에 이르는 빈 집 숫자는 정상이 아니다”라면서 “집을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돈을 불리기 위한 도구로만 보는 부유한 투자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