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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발 시아-수니파 전쟁 확산 조짐… 중동 지도 바꾸나

정소군 2014. 6. 15. 14:11

중동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의 궁극적 목표인 ‘대(大) 수니파 국가 설립’이 구체화되면서다. 이들은 시리아 북동부와 이라크 북서부 사이의 국경을 허물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가 이뤄지는 수니파 국가를 세우려 하고 있다. 이라크 사태가 역내 종파간 분쟁을 넘어 아랍권 전체의 시아파, 수니파 간 패권 다툼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ISIL, ‘수니파 국가 건설’ 치밀한 준비로 빠른 진격


현재 중동의 지도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나눠갖기 위해 맺은 ‘사이크스 피코 비밀협정’에 따라 그어진 것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오랫동안 반목해 온 뿌리깊은 이슬람 세력의 갈등이나 복잡한 민족적 배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딸꾹질을 하며 지도를 그리다가 중동의 국경선이 지그재그가 됐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순전히 유럽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어진 국경선은 이후 한 세기 동안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어 놓았다. 최근 ISIL이 함락한 모술은 오랜기간 수니파 지역이었지만 시아파 지역인 바그다드와 한 국가로 묶여 버렸다. 수니파가 많이 사는 시리아 알레포 역시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 해안도시와 한 국가로 합쳐져 버렸다.

 

AP통신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러한 분쟁의 씨앗들이 한 국경선 안에 마구 혼재돼 있었지만, 그동안은 독재정권의 억압적인 통치 때문에 간신히 억눌러 올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아랍의 봄’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거나 약화되자 시아파와 수니파가 각각 결속하면서 이들 간의 영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쿠르드족도 독립 움직임…“이라크 세 동강 날 우려”


ISIL의 이라크 진격은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결과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ISIL이 이라크의 주요 도시를 잇달아 함락하는데 불과 이틀이 걸렸다”면서 “갑작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ISIL은 활동을 본격화 한 2006년부터 ‘수니파 이슬람 국가 건설’이란 명확한 목표를 향해 준비해 왔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06년은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이라크에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정부가 새로 들어선 해이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국가벨트’가 형성되면서 이때부터 수니파 급진주의자들의 위기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됐다. ISIL은 시리아의 내전을 틈타 정부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빼앗고 곡물저장고나 유정시설을 장악해 자금을 확보했다. 최근 수년간 차근차근 세력을 불려온 ISIL은 올초 이라크 팔루자와 라마디 함락를 시작으로 불과 반년만에 바그다드 턱밑까지 진격했다.



이라크 사태는 아랍권 전체의 이슬람 수니파 대 시아파의 대결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라크 최고 시아파 성직자가 수니파 반군에 무력으로 대항하자고 촉구하자 시리아 반정부군을 돕기 위해 싸우던 시아파 병사들이 이라크로 귀환하는 등 시아파 무장세력이 집결을 시작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도 알말리키 정부의 붕괴를 잠자코 보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군, 유전지대 키르쿠크를 장악


이라크와 시리아의 혼란을 틈타 분리독립을 꾀하려는 이라크 북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이라크 의회 내 쿠르드족 국회의원인 쇼레쉬 하지는 뉴욕타임스에 “쿠르드 지도부가 이런 황금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라크에는 안됐지만 이번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라크 인구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지난 23년 간 북동부 지역에서 제한적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예 독립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실제 쿠르드 자치정부군은 이라크 정부군이 ISIL의 공격을 피해 도망간 틈을 타 이라크 정부와 통제권 싸움을 벌여온 유전지대 키르쿠크를 장악했다. 이대로 가면 이라크가 수니파 중심의 서북부와 쿠르드족의 동북부, 시아파 중심의 중남부 지역으로 세 동강 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