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것 없는 하마스, 꼬이는 이스라엘…치킨게임 양상
지난 15일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휴전안을 수락하며 6시간 동안 공습을 멈추자 ‘유령도시’로 변했던 가자시티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사람들은 공습이 시작된 후 8일만에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왔다. “오늘 아침부터 폭격이 멈췄어요. 이제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겁니다.” 압둘라 사와프리(62)가 가디언에 말했다.
그러나 사와프리의 기대는 금세 부질없는 희망으로 끝났다. 하마스가 휴전을 거부하자 이스라엘이 그날 오후부터 다시 폭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동부 지역 주민 10만여명에게 추가로 대피 경고를 내렸다. 16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에서도 하마스의 로켓포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왔다.
가자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15일 남부 라파에서 전날 새벽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으로 부서진 민간인 가정집 건물의 잔해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휴전협상이 결렬된 후 공습을 재개했다. 라파 _ AP연합뉴스
애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비롯된 이번 교전은 쉽게 끝내기 어려운 ‘치킨게임’ 양상을 띠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성전’을 벌인다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약화된 입지를 다시 강화하고, 이스라엘은 ‘외부의 적’인 하마스를 내세워 이스라엘 우파들을 단합시키려 한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복잡하다. 하마스가 필요악의 존재인 이스라엘로서는 휴전이 결렬되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대니얼 레비 유럽의회 중동국장은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무너지면 오히려 더 다루기 어려운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난립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하마스가 완전히 붕괴되지 않을 정도로만 타격을 입히기 위해 공격의 수위를 세밀히 조절하려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에프라임 할레비 전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 국장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같은 극단주의 단체가 등장할 것”이라며 하마스와의 대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팔 휴전까지 양측 복잡한 속내…피해는 가자 주민 몫
반면 휴전을 거부한 하마스는 “우리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마스의 핵심 지도부는 공습으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과 달리 대부분 지하 벙커에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팔 갈등이 높아지면서 이스라엘에 온건한 입장인 정치적 라이벌 마흐무드 아바스 대통령의 지지율을 빼앗아 오고 있는 중이다.
협상에 임하더라도 국경선을 봉쇄 당한 최악의 현재 상황에서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도 하마스가 쉽게 휴전 제안에 응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스라엘은 2008년 가자침공, 2012년 가자공습이 끝난 후 오히려 분리장벽 주변의 접근금지구역을 확대하는 등 매번 보복을 가해왔다.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는 “양측 모두 이번 교전으로 이득을 얻는 측면이 있다”며 ”서로 최대한의 것을 얻어낸 후 휴전협상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 사이에 끼어서 피해를 보는 것은 가자지구의 민간인들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