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아시아
태국 반정부 시위 수장 수텝 트악수반, 탁신 남매와 늘 ‘엇갈린 운명’
정소군
2013. 12. 3. 17:30
태국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64)는 탁신 남매와 악연으로 얽혀 있다. 수텝의 정치적 위기는 곧 탁신 남매에게 기회였고, 탁신 남매의 위기는 수텝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수텝은 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태국 남부 수랏타니 지방의 부유한 지주가문에서 태어났다. 야자유와 새우 양식업으로 크게 성공한 그는 1979년 총선에서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태국 남부와 수도 방콕의 엘리트, 기업인들에게 탁신이 가장 배척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후에 수텝이 반탁신파를 이끄는 시위대의 지도자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막후의 해결사’로 불릴 만큼 노련한 정치인이던 그는 1995년 토지개혁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첫번째 위기를 맞는다. 농촌의 빈농들에게 돌아가야 할 토지권을 남부 푸껫의 지주들에게 빼돌려 준 혐의로 거센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탁신 친나왓이었다.
토지개혁 스캔들을 계기로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빈곤 해소를 기치로 내건 탁신은 농촌 빈농과 저소득 노동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친탁신파의 절대다수인 빈농과 노동자들은 탁신이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데 크게 개의치 않는다. 수텝과 탁신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비리를 저질렀지만 그나마 탁신은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펼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는 정서 때문이다.
수텝은 주식거래 비리에 연루된 탁신을 ‘부패 정치인’이라 공격했지만, 자신도 2009년 정부가 불하한 미디어 그룹 주식을 불법적으로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수텝은 정치적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탁신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아 부활했다. 2008년에는 반탁신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탁신계 정권이 전복되자, 선거 없이 꾸려진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과도정부에 부총리로 입각하는 데 성공했다. 또 2010년 친탁신파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허가해 92명을 사망케 한 그는 이에 대한 역풍으로 탁신의 동생인 잉락이 총리로 당선되자 살인 혐의로 기소되는 등 위기에 몰렸지만, 잉락의 사면법 사태를 기회 삼아 현재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텝은 ‘얼굴마담’일 뿐, 2006년 탁신을 몰아낸 기득권 세력이 이번에도 용의주도하게 뒤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방콕의 싱크탱크 시암정보분석원의 칸 유엔옹 전무는 “반정부 시위대를 수텝 혼자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반정부 시위대는 하루에 500만바트(약 1억6000만원)를 쓰고 있는데, 이는 태국 기득권층이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수텝은 정치적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탁신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아 부활했다. 2008년에는 반탁신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탁신계 정권이 전복되자, 선거 없이 꾸려진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과도정부에 부총리로 입각하는 데 성공했다. 또 2010년 친탁신파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허가해 92명을 사망케 한 그는 이에 대한 역풍으로 탁신의 동생인 잉락이 총리로 당선되자 살인 혐의로 기소되는 등 위기에 몰렸지만, 잉락의 사면법 사태를 기회 삼아 현재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텝은 ‘얼굴마담’일 뿐, 2006년 탁신을 몰아낸 기득권 세력이 이번에도 용의주도하게 뒤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방콕의 싱크탱크 시암정보분석원의 칸 유엔옹 전무는 “반정부 시위대를 수텝 혼자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반정부 시위대는 하루에 500만바트(약 1억6000만원)를 쓰고 있는데, 이는 태국 기득권층이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