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과 맞설 민중의 범위를 넓혀라 [책과 삶]

정소군 2022. 3. 16. 19:24

ㆍ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ㆍ샹탈 무페 지음·이승원 옮김
ㆍ문학세계사 | 155쪽 | 1만3000


신자유주의 ‘탈정치화’ 멈추고

‘우파 포퓰리즘’의 타개를 위해

여성·성소수자·소수 민족 등

소외층에 ‘공공전선’ 결집 호소


오늘날 ‘포퓰리즘’만큼 뜻이 오염된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보수 언론과 기득권층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조합해 만든 ‘복지 포퓰리즘’이란 용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이 단어는 ‘어리석고 욕심 많은’ 대중에 영합하려는 진보 정치세력을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용되곤 한다. 거꾸로 유럽에서는 약진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 때문에 ‘네오 파시즘’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거의 무차별적으로 ‘포퓰리즘’이란 딱지가 붙는다.

그래서 이 책은 “현 상태의 유지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깎아내리고자 미디어가 이 용어에 부여해 온 경멸적 의미를 제거하기 위해” 포퓰리즘의 정의부터 다시 설명한다. 사실 포퓰리즘은 좌우 정치적 이념과 무관한 개념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포퓰리즘의 본래 의미는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정치적 경계선을 긋고 ‘권력자들’에 맞서 ‘패배자들’이 결집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과 ‘우리’는 소수 특권층과 서민층일 수도 있고, ‘갑’과 ‘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우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샹탈 무페는 기존의 좌파가 계급 투쟁의 관성에 천착하는 바람에 신자유주의에 맥없이 패배했다고 비판해 온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1985년 그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쓴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후마니타스)은 좌파가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생태주의 등 계급에 기초하지 않은 운동을 배척하는 무능함을 드러냈다고 주장해 당시 좌파 지식인과 운동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5 년 그리스의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시리자의 한 지지자가 집회에 참석해 긴축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mp;amp;amp;nbsp; AFP 연합뉴스


그러나 노동계급 투쟁에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하지 않고 다양한 대중의 투쟁을 동등하게 접합해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고도화로 ‘노동자들’이 파편화되고 기존의 계급 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소외된 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더욱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실제 포퓰리즘의 뿌리는 1890년대 미국의 인민당(People’s Party)이다. 인민당은 서민의 삶을 위협하는 금본위제 폐지를 요구하며 대자본가와 엘리트에 맞서 노동자, 소농, 영세 자영업자 등이 힘을 합해 창당한 정당이었다.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주체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관통하는 하나의 공동전선 앞에 결집한 최초의 사례였다.

무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계를 노출한 신자유주의 모델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지금이야말로 포퓰리즘을 위한 적기(populist moment)라고 말한다. 마거릿 대처 이후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자 돌파구를 찾지 못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좌우의 대결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됐고, 이들은 중도에서의 합의를 찬양하며 ‘제3의 길’을 표방했다.

무페는 이처럼 좌우 세력 간의 정치적 경계가 흐릿해진 현상을 신자유주의로 인한 ‘탈정치적’ 현상이라고 지칭한다. 그 결과 투표장에 간 유권자는 선택권을 빼앗겼고, 시민의 역할은 그저 “정치 기술자들이 협상을 통해 도출해 낸 정책을 승인하는 데 그치게 됐다”. 이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과두제화(oligarchization)’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후 강제된 긴축정책은 다수의 중산층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중도에서의 합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급진적 주장을 펼치는 포퓰리즘 정당이 영향력을 확대해 헤게모니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유류세 인상과 세금 부담 등에 반발해 지난해 &amp;amp;amp;nbsp; 10 월부터 넉달 동안 집회를 연 프랑스 &amp;amp;amp;lsquo;노란조끼&amp;amp;amp;rsquo; 시위대. 이들이 정치세력화할 경우 프랑스 우파 포퓰리즘의 표를 잠식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amp;amp;amp;nbsp; AFP 연합뉴스


하지만 민주적 저항이 반드시 진보적인 목소리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요구들은 외국인 혐오(xenophobic)의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유럽에서 부상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을 목도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슬로베니아에서는 극우 ‘슬로베니아 민주당’이 제1당의 자리를 차지했고, 사회민주주의의 보루인 스웨덴에서조차 신나치즘에 뿌리를 둔 ‘스웨덴 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3대 정당 중 하나로 떠올랐다. 2017년 독일에서는 반이민을 기치로 내건 ‘독일을 위한 대안’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 정당 최초로 독일 의회에 입성했다. 브라질에서도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재벌·학벌·부동산 등에 기반한

한국 사회의 ‘과두제화’는 여전

대중들의 다양한 민주적 요구

‘등가적 접합’ 해법 찾기가 과제


그러나 이 책에서 무페는 좌파 세력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을 비이성적인 열정에 사로잡힌 ‘극우’ 또는 ‘네오 파시스트’로 분류하면서 악마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중도적 합의에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신경 써주는 유일한 세력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문제의 원인을 포퓰리즘으로 돌리며 대중과 거리를 두려 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위험한 헤게모니가 형성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탈정치화’와 우파 포퓰리즘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 바로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좌파, 우파 포퓰리즘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다. 우파 포퓰리즘이 이민자를 배제한 채 ‘우리’를 민족주의, 인종주의로 구성하려 한다면 좌파 포퓰리즘은 노동자, 불안정한 중산층은 물론 이민자, 성소수자, 여성 등 다양한 주체들의 민주적 요구를 평등과 참여라는 원칙 아래 등가적으로 접합시키려는 시도이다.

포퓰리즘의 뿌리인 &amp;amp;amp;nbsp; 1890 년대 미국 인민당( People&amp;amp;amp;rsquo;s &amp;amp;amp;nbsp; party ) 당원들의 모습. 당시 인민당 당원들을 포퓰리스트라고 불렀다.


무페는 좌파 포퓰리즘이 다른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낙오자가 된 듯한 박탈감을 외국인 혐오적 언어로 표현했던 우파 포퓰리즘 지지자들의 입장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 2017년 장 뤽 멜랑숑이 이끈 프랑스의 좌파 포퓰리즘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이전 선거에서 마린 르펜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표를 잠식하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은 155쪽에 불과한 얇은 분량이지만 노학자의 심도 깊은 고민이 응축돼 담겨 있다. 익숙지 않은 정치철학 용어들이 등장하긴 하나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쓰여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숙제는 남는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그리스의 시리자는 집권에 성공했지만 결국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유럽중앙은행·유럽연합)의 요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한국 역시 소수 특권층에 대한 분노로 다수의 대중들이 결집해 정권을 교체했지만 재벌과 학벌, 부동산 기반의 ‘과두제화’ 현상은 여전히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 공동의 전선을 형성했던 대중들은 현재 비정규직, 난민, 젠더 등 다양한 이슈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대중들의 다양한 민주적 요구들을 ‘어떻게’ 등가적으로 접합시키고, 그렇게 형성된 공동의 전선을 ‘어떻게’ 헤게모니 전환의 이행 단계까지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무페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흔들리고 있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더욱 절박한 과제이기도 하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