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뚫린 감옥에 갇힌 가자 주민들
당나귀가 끄는 작은 수레에 실을 수 있는 짐은 매트리스와 이불이 전부다. 아버지는 그 위에 네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경고하자 이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 수천명이 13일 긴급 피란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남부 칸유니스까지 초토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지대’란 없다. 시리아 난민들처럼 국경 너머로 도망칠 수도 없다. 이곳은 ‘하늘만 뚫려 있는 지상 최대의 감옥’, 가자지구이기 때문이다.
국제인권센터 보고서로 조명한 가자지구의 삶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경계선은 고압전류가 흐르는 높이 8m의 장벽으로 분리돼 있다. 이집트와의 국경선도 철제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바닷길 역시 이스라엘 해군이 봉쇄했다. 가자지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는 북쪽의 에레즈 검문소와 가자·이집트 국경 검문소가 유일하지만 이곳을 지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체포된 전력이 있을 경우 연좌제가 적용돼 통행증이 발급되지 않는다. 국제단체인 팔레스타인인권센터가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가자지구에서의 삶을 재조명해봤다.
팔레스타인인들이 13일 가자시티의 한 모스크에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숨진 하마스 경찰 책임자 타이시르 알 밧시 일가족 18명의 시신을 보며 애도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밤 밧시를 사살한다며 가자시티 동부 투파 지역에 있는 그의 집과 주변 모스크 등을 폭격했다. 이 공격으로 18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으며 밧시는 중태에 빠졌다. 가자시티 _ AFP연합뉴스
가자 북부 베이트하눈에 사는 마흐무드 사미 나임(21)의 가족은 꽤 넓은 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인권센터와 인터뷰에서 그는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농장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곳은 마치 파라다이스 같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2000년 2차 인티파다(봉기)가 일어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스라엘, 2000년 2차 봉기 보복으로 농장 20% 파괴
이스라엘은 2001년 가자지구 경계선에 세워진 장벽 일대를 ‘접근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장벽에서 300m 떨어진 그의 농장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듬해 이스라엘군은 그의 농장을 전부 갈아엎어버렸다. 이스라엘이 2차 인티파다에 대한 보복으로 파괴한 농장은 가자지구 전체 농토의 20%에 달한다. 이스라엘군은 2008년 가자침공 이후 장벽에서 1.5㎞ 떨어진 곳까지 접근금지구역을 확대했다.
접근금지구역에 가까이 가면 무자비한 총격이 가해진다. 이스라엘군 몰래 나무에 물을 주러 가던 농부들이 희생됐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에서 철군한 뒤인 2006~2013년에도 539차례나 가자지구 안으로 진입해 주민들을 체포하거나 사살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어민들이 해안가로부터 조업이 가능한 제한거리도 2006년 18㎞에서 2009년 6㎞로 줄였다. 인권센터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해군이 제한선에 접근한 어선에 사격을 가하거나 어민을 납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012년 휴전협정 맺은 이후에도 주민에 무차별 공격
주요 생계수단을 뻬앗기면서 일상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가자 주민의 비율은 2006년 초 53%에서 2009년 75%로 증가했다. 나임의 가족 역시 농장을 빼앗긴 후 국제사회 원조에 의존해 살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2012년 맺은 휴전협정에 따라 접근금지구역 내 농지 접근이 허용된다는 소식이었다. 나임은 소식을 듣자마자 농지로 달려가 감격을 만끽했다. 그 순간 2대의 이스라엘 군용차가 달려와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나임은 반대쪽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지만 가슴에 총을 맞았다.
이번에는 나임의 집이 있는 베이트하눈에 이스라엘이 대규모 공격을 예고하면서 대피령이 내려졌다. 땅을 빼앗기고 총상의 후유증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나임은 이제 집까지 잃을 위기에 처했다. 목숨만 건지면 그것이 곧 행운인 삶이 가자 주민들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