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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땅’ 떠나기 위해… ‘죽음의 항해’ 떠나는 그들

국제뉴스/중동아프리카

by 정소군 2014. 6. 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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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길목인 6월로 접어들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본격적인 ‘보트 시즌’이 시작됐다. 시리아와 리비아, 남수단의 내전 이후 급증한 보트 난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은 비상에 걸렸지만, 이미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는 수만여명의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는 보트에 몸을 실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도 ‘기회의 땅’ 유럽으로 향하는 보트 난민


지중해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의 바다’다. 정원의 2~3배를 초과해 태운 소형배가 전복되면서 수십·수백명씩 떼죽음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다. 무사히 근처까지 도착하더라도 그리스와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의 ‘보트 밀어내기’ 때문에 바다 위를 표류하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죽음의 항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들은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디언 등 외신 보도와 국제앰네스티 자료 등을 토대로 여러 난민들의 사연을 종합해 하나로 재구성했다.

 

 

시리아와 이집트 난민 331명을 태우고 그리스로 향하던 난민선이 지난 3월31일 크레타섬과 키티라섬 사이에서 기계고장으로 표류하던 중 그리스 해양경비대에 구조됐다. 난민들 중 40여명은 어린이였고 24명은 여성이었다. 그리스 해양경비대·AP연합뉴스

 

시리아 알레포에 살고 있는 카리마(가명)의 남편은 석 달 전 ‘통폭탄’ 공격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미사일 공습으로 옆 마을에서 87명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카리마는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시리아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알레포에서 50㎞ 떨어진 터키의 난민캠프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60만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든 캠프는 더 이상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무엇보다 유럽 이외 국가 사람들의 망명을 허용하지 않는 터키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통폭탄에 남편 잃고 아이들 위해 시리아 탈출 


그는 스웨덴 같은 일부 유럽 국가들이 난민 신청을 하는 시리아인들의 재정착을 돕기 위해 일자리와 쉴 곳을 제공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한 줄기 빛과 같은 이 제도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난민 신청을 하려면 그 나라 국경 안에 발을 디뎌야만 했다. 유엔난민기구가 난민캠프에서 취약자를 선별해 서유럽 국가로 수송해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제까지 이 혜택을 본 사람은 시리아 난민 230만명 중 3만명에 불과할 정도다. 


결국 그에게 남은 길은 유럽으로의 밀입국뿐이었다. 그는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기로 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보트에 탈 난민들을 모집하는 브로커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탈리아나 그리스로 향하는 관문인 터키와 리비아에는 난민들에게 희망을 팔아 돈벌이에 나선 브로커들이 넘쳐난다.

2500달러는 갑판, 1500달러는 엔진 옆 짐칸 

라 레푸블리카의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보트에 타기 위해 난민들이 내는 돈은 1500~2500달러에 이른다. 2500달러를 내면 뙤약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방수천 아래의 ‘1등석’ 갑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1500달러를 내면 보트 엔진 옆에 위치한 짐칸에 타야 한다. 정원의 2~3배가 넘는 인원을 태운 보트가 가라앉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갇혀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2011년에는 리비아에서 이탈리아 람페두사로 향하는 난민보트의 짐칸에서 25명의 청년들이 질식해 숨진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여기에 브로커들은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구명조끼를 빌려주는 대가로 200달러, 물과 빵조각을 제공하는 대가로 100달러 등을 추가로 받는다.

 

 

카리마는 지중해를 건너가던 난민들이 수없이 수장돼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더 좋은 삶을 주고 싶은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가득 태운 보트가 ‘죽음의 항해’를 시작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저 멀리 그리스의 사모아섬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안경비대가 나타났다.

경비대 ‘밀어내기’에 배 뒤집혀 짐칸선 떼죽음


그들은 보트를 향해 “터키로 돌아가라”고 경고했다. 난민들은 “배가 고장나서 돌아갈 수 없다”고 애원했다. 그들은 일부러 배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카리마는 “배에 아이들이 타고 있다”고 사정하며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해안경비대는 경비정과 보트를 끈으로 연결해 터키 쪽을 향해 끌고 가는 ‘밀어내기’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보트가 심하게 흔들거리다가 전복됐다. “헬프 미!” 바다에 빠진 난민들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영어 단어를 외쳤다. 경비대는 그제서야 일부 사람들을 구조했다. 보트의 짐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카리마는 겨우 유럽 땅을 밟았다. 아이 한 명을 지중해 깊은 바닷속에 남겨둔 채로.

 

 

시리아 내전 후 난민 수십배 급증… 남유럽국들, EU에 대책 요구


‘보트 시즌’이 다가오면서 유럽은 비상이 걸렸다. 시리아 내전으로 2011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난민들이 남수단과 리비아의 정정불안이 겹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람페두사 인근 바다에서 난민 보트가 침몰해 3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고 이후 이탈리아 해안경비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 구조작업에 나서자 더욱 더 많은 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및 몰타 해군은 7일에도 람페두사 인근 바다에서 난민 1200명을 구출했다.

 

 

난민들의 주요 이동통로가 된 리비아,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국제사회의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새로 선출되는 7월에 유럽 보트난민 문제가 제일 시급한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으면, 우리가 테이블을 엎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집트, 리비아, 수단 등에 거대한 난민수용소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으로 유입되는 난민 수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U 국경관리청은 올 4월까지 4만2000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려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362명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인권 개념이 전혀 없는 국가에 난민수용소를 만들면 안된다”며 이 같은 방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 호주나 이탈리아처럼 상대적으로 인권 개념이 높은 서구 국가가 운영하는 람페두사와 파퓨아뉴기니의 난민수용소에서도 가학행위와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주디스 서덜랜드는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면) EU 국경 밖에서 망명을 신청할 수 있는 채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유엔과 EU가 난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인도주의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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