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이 제주도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보리출판사의 편집자 3명은 급히 비행기를 탔다. 물이 오염되면서 보기 어려워진 민물고기가 내린천이나 산속 깊은 골짜기에서 목격됐다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달려갔다. 단 몇 시간 만에 피었다 사라지는 노랑망태버섯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시들어 버린 상태였다. 이들은 꼬박 한 해를 기다린 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피어난 버섯을 취재했다.
장장 25년의 시간이었다. 1700여종의 동식물들을 그린 3000여점의 세밀화. 참여한 화가와 작가, 감수자, 편집자만 200여명에 달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어진 아이들을 위한 사명감 하나로 뚝심있게 걸어온 보리출판사의 노력이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도감 시리즈’의 완성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큰도감 시리즈’는 이번에 <나무도감>과 <곤충도감>이 출간되면서 10권이 완성됐다. <바닷물고기 도감> <버섯도감> <동물도감> <나비도감> <새도감> 등 이 땅에 사는 동식물들의 종을 두루 망라해 털끝 하나, 실뿌리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그려냈다.
사진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오랜 시간과 많은 공력이 드는 세밀화를 굳이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획에서부터 자료를 수집하는 사전 작업은 젖혀두고, 오직 강아지풀 하나를 그린다고 했을 때 화가가 하루 8시간을 꼬박 그려도 3주 이상이 걸린다. 보리출판사 측은 “아무리 정밀한 사진기라도 사람의 눈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세밀화는 기교보다 정성”이라며 “사람의 눈으로 오랫동안 관찰하고 정성을 다해 자세히 그리기 때문에 사진처럼 사물과 똑같아 보이면서도 생명체가 지닌 생기와 따뜻한 감성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세밀화 작업에 참여한 작가들은 동양화나 회화를 전공한 화가들이다. ‘큰도감 시리즈’를 통해 세밀화와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은 웬만한 학자 못지않은 동식물 전문가가 됐다. 특히 <곤충도감>의 권혁도 작가, <바닷물고기 도감>의 조광현 작가 등은 한 분야의 도감만 십수년 동안 그려오고 있다. 500여종의 바닷물고기를 그린 조 작가는 동해와 서해, 남해의 바닷속 물고기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 스킨스쿠버 다이빙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권 작가는 넓적사슴벌레와 누에나방, 나비 몇 종을 집에 먹이식물을 두고 직접 기르면서 그리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 후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보리출판사 세밀화 도감에는 대부분 취재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다.
한국 세밀화 도감의 역사는 사실상 보리출판사의 세밀화 도감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1997년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도감 시리즈’를 처음 낼 때만 해도 국내 세밀화 도감의 맥은 끊겨 있는 상태였다.
보리출판사 측은 “보리출판사의 ‘큰도감 시리즈’가 그려낸 동식물 세밀화는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자연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세밀화 화가들을 양성하고 재원을 뒷받침해 더 많은 세밀화 도감이 나오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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