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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과 스탈린 사이 갇힌 푸틴

국제뉴스/유럽과 러시아

by 정소군 2015. 3. 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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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반도 합병 1주년을 맞아 15일 방영된 국영 로시야1 TV 다큐멘터리에서 “크림 합병을 앞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핵무기를 준비시켰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최후의 수단까지 고려했다는 것은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3월18일 크림반도 합병안에 서명함으로써 1954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가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에게 ‘선물’로 준 크림반도를 60년만에 다시 되찾아왔다.


 

그러나 합병의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크림 합병 후 발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은 1만6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신냉전의 분위기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유럽 상공에서는 나토군과 러시아군이 충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3차에 걸친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탓에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1년 전의 반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을 반대하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크렘린궁 인근에서 피살되면서, 러시아를 둘러싼 우려는 정점에 달했다.


2000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등장한 푸틴이 집권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푸틴은 그해 7월 발표한 ‘러시아 연방 대외정책 개념’에서 “EU와 미국 등 서방국들을 주요 정치, 경제 파트너로 삼겠다”고 했다. 푸틴 집권 후 러시아는 7년간 연평균 6.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강력한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경제와 사회를 안정시키고 ‘강한 러시아’의 자부심을 고취시킨 러시아의 정책들은 ‘푸티니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로마제국 황제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상반신 석고상이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전시돼 있다. 이 석고상은 오는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_ EPA연합뉴스  


그러나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한 중산층과 시민의식의 확산은 푸틴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2011년 부정선거 의혹에 반발해 대규모 반푸틴 시위가 일어나자 푸틴은 강력한 권위주의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조지아의 장미혁명(2003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2004년),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2005년) 등 구소련 국가들에서 발발한 민주화 시위를 ‘서방의 조종’에 의한 것으로 본 푸틴은 인권운동 탄압, 언론 국유화, 반체제 인사 탄압을 강화했다.


넴초프 피살을 계기로 푸틴의 ‘스탈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2000년대 말부터 크렘린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스탈린 시대를 재평가하는 작업들이 진행돼 왔다. 유럽과 미국이 만들어 놓은 적대와 포위의 ‘엄정한 현실’이 당시 스탈린으로 하여금 동원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푸틴의 권위주의 정책 역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혼란스러운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필연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옐친이 남긴 유산은 부패와 혼란이었고, 스탈린이 남긴 동원체제의 유산은 가혹한 탄압과 암살이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놓고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서구 국가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옐친과 스탈린 사이 갇힌 푸틴은 과연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친서방은 ‘부패·혼돈’ 연상… 푸틴은 ‘구세주’로 여겨져”


지난 2월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8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가 도심 한복판에서 피살 당하고,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루블화가 폭락하고 있는데도 그의 인기가 여전한 이유는 뭘까. 국민대 유라시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러시아인 바딤 슬렙첸코(41·사진)를 만나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러시아 경제가 어려운데도 푸틴의 지지도가 치솟는 원인은.
 

“지난 1월 말 모스크바에 다녀왔는데, 생필품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서구 외신들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루블화가 추락하면서 수입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서민들의 일상 생활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 외제 치즈나 하몽을 먹지 못하게 됐다는 정도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푸틴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1990년 소련이 붕괴되고 친서방 정권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들어선 후 러시아는 물가가 1000% 가까이 오르고 범죄와 비리가 들끓다가 결국 모라토리엄을 맞았다. 러시아에서 ‘친서방과 민주주의’는 곧 ‘가난과 부패, 혼돈’의 연상어이다. 러시아인들에게 푸틴은 망해가는 나라를 살려놓은 ‘구세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강경대응을 지지하나.
 

“러시아 속담에 ‘닭은 새가 아니듯 우크라이나는 외국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동부나 크림반도에 가까운 친척들이 살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전라도나 경상도 같은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대다수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손잡은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는가.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라는 것은 안다. 넴초프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야당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그러나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야권 정치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옐친 시대의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반미감정이 80%를 넘어서 냉전 시대 이후 최고라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서구의 위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왜 코소보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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