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몽유병자들
ㆍ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 이재만 옮김
ㆍ책과함께 | 1016쪽 | 4만8000원
1차 세계대전의 단초가 된
‘사라예보의 총성’에 얽힌
유럽 국가들의 역학관계 해부
2017년 12월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 자리에서 두꺼운 영어책 한 권을 건넸다. 책의 표지에는 (몽유병자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실을 보도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의도치 않은 전쟁을 막자는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의미를 분석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길래 펠트먼 사무차장은 이 책을 중요한 외교무대의 소품으로 활용한 것일까.
2014년 해외에서 출간된 이 책의 한국어판이 최근 출판됐다. 이 책은 100년도 더 전에 유럽에서 일어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탐색한 역사서이다. 해묵은 주제이지만, 20년 전이나 30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 더 신선하고 유의미하다. 저자는 “1914년의 상황은 (냉전시대인) 1980년대보다 안정적인 양극체제가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여러 세력에 자리를 내준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또렷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100년 전 복잡했던 국제정세는
오늘날 중동·북한 등을 둘러싼
여러 국가들의 수싸움과 닮아
실제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린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의 ‘7월 위기’는 수많은 주역들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구조로 진행됐다. 크고 작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파국 위기를 맞았던 유로존이나 중동과 북한을 둘러싼 여러 국가들의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국제 정세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은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당시 교전국들이 저마다 남긴 사료만 2만5000여권으로 방대하다. 문제는 “이 사료의 바다에 신뢰할 수 없는 해류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각자 자신들을 변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전쟁이 ‘왜’ 일어났느냐보다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물음에 주목한다. 1차 세계대전이 ‘왜’ 발발했느냐는 물음은 결국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가 ‘누구’ 때문에 일어났느냐는 책임론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저자는 전쟁의 발발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특정한 분석틀을 내놓기보다는 전쟁을 불러온 핵심 행위자들의 결정을 시간순으로 차근차근 따라가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이 책의 시작은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기 11년 전인 1903년 6월11일 새벽 2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르비아 육군 장교 28명이 베오그라드 왕궁에 침투해 폭압적인 전제군주를 참혹하게 살해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국왕을 끌어내린 세르비아는 의회제 국가로 탈바꿈했지만, 실제 세르비아 정치를 쥐락펴락한 것은 막후의 권력자로 남은 쿠데타의 주역들이었다. 이들은 발칸반도에 통일된 남슬라브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꿈을 실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오스트리아였다.
암살단의 주역들은 ‘흑수회’를 만들어, 마치 오늘날의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들처럼 점조직 형태로 연결된 여러 테러단체들을 양성한다. 그리고 1914년 6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한다. 흑수회로부터 훈련을 받은 오스트리아령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것이다.
하지만 사라예보 사건이 반드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 따위는 없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가 꼭 전쟁을 해서 사태를 해결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설령 전쟁을 벌인다 하더라도 이 두 나라 사이의 갈등에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뛰어들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은 일어났다. 전쟁을 일으킬 적극적 의도가 전혀 없었던 각 나라들이 그때그때 내린 결정들이 중층적으로 쌓이면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 국가들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1870년 알자스-로렌 지방을 뺏긴 후 독일과 견원지간이 된 프랑스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에 손을 내밀었다. 러시아가 프랑스의 손을 잡은 이유는 중국을 놓고 식민지 경쟁을 벌이고 있던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영국은 최대 위험국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화친 협정을 맺는다.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일시적으로라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한 속셈이었다. 영국은 결국엔 러시아에도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가 혹시라도 일본으로부터 입은 손실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를 위협해 만회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이 얽히고설킨 동맹과 협약의 화살표를 따라가다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주요축은 독일·오스트리아 대 러시아·프랑스·영국의 구도였지만, 러시아·프랑스·영국 세 나라 중 어느 나라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한 침략전쟁 계획에 관여한 적이 없다. 심지어 영국과 러시아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맹이나 협약을 맺은 적조차 없다.
그러나 러시아·프랑스·영국의 핵심 정책 수립자들이 내린 결정들은 의도치 않게 독일을 고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독일에 미칠 영향을 놀라울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신생 제국이었던 독일은 독불전쟁으로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러시아에 손을 뻗었지만, 러시아는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영국은 독일에 관심이 없었다. 식민지 쟁탈전에서 소외된 독일에 딱히 원하는 것이 없던 영국으로서는 독일과 협약이나 동맹을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립이 심화된 독일이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나라는 오스트리아뿐이었다. 독일은 동맹국인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사실 이는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에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이 적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해와 오판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속에서 눈앞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 각 나라들의 결정이 가져온 연쇄효과에 따라 그렇게 결국 1차 세계대전은 발발했다.
이 책은 독일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는 기존의 많은 역사책들과 달리 1차 세계대전은 특정 국가의 범죄가 아닌 ‘공동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세르비아 역사가 등 일각에서는 “발칸반도에서 다 죽어가는 오스만 왕국의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제국주의 야심을 드러냈던 열강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세르비아의 야만성을 강조한 ‘역사적 수정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 한 국가의 책임을 입증할 필요가 정말로 있을까? 전쟁 발발에 책임이 있는 정도에 따라 국가들의 유책 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러한 접근법은 상호작용하며 갈등을 빚은 관계에서 궁극적으로 한 주역은 옳게 행동하고 다른 주역은 잘못 행동한 것이 틀림없다고 전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온실 안에서 연기 나는 총을 손에 쥔 채로 시체를 지켜보는 범인을 발견하며 끝나는 애거서 크리스티류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요 인물들 모두가 연기 나는 총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고 말한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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