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데니스 주한 남아공 대사에게 듣는 ‘민주화 20년’
▲ 첫 투표권 행사 감격 이후 국내총생산 3배나 늘었고 식수·전력 접근권도 개선
- 만델라 서거 후 얼마 되지 않아 맞은 민주화 20주년은 여러 의미에서 더욱 각별할 것 같은데.
“남아공은 그를 잃은 상처로부터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에 대한 추억이 생생하다. 만델라는 남아공 민주화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20주년 행사 역시 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매년 7월18일은 유엔이 정한 ‘만델라의 날’인데, 유엔이 한 개인을 기념하는 날을 지정한 것은 만델라가 처음이다. 그는 그만큼 남아공을 넘어 온 인류에게 참으로 큰 사람이다.”
- 민주화 이전과 지금의 남아공은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는가.
“아파르트헤이트 때 흑인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된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공공장소에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한때 나의 꿈은 투표 한번 해보는 것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이제 참정권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이다. 민주화 이후 남아공의 국내총생산(GDP)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0% 안팎의 백인들이 다수의 흑인을 억누르는 데 쓴 비용을 생산적으로 전환한 덕분이다. 또 식수나 전력 등 사회기반시설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흑인들의 접근권도 크게 향상됐다. 남아공은 원주민, 아시아계, 유럽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인종 국가이다. 이 중 어느 한 그룹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무지개 나라’이다. 그래서 현재 남아공의 공식 언어는 무려 11개이다. 남아공에서는 그 어떤 인종도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지 않다.”
- 남아공의 민주화는 백인 정권과의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그것을 가능케 한 힘은 무엇이었는가.
“인내와 용서, 그리고 국제사회의 압력이었다. 협상은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다. 백인 정권은 자신들이 누린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백인 의원석을 쿼터로 확보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협상을 통해 오늘날 남아공의 헌법 근간이 된 민주주의, 인종차별 철폐 등을 납득시키기 위해 우리는 2년 동안 ‘인내’해야 했다. 또 처음에는 백인 전범을 국제재판소에 세우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결국 ‘진실과화해위원회’를 만들어 보복보다는 그들이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면 용서해주고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도록 했다.”
▲ ‘무지개 나라’ 조화 위해 입법·사법·행정수도 분리, 지역 균형발전 정책 전개
현지 일간 메일앤드가디언은 “민주화 이후 줄곧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ANC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나타날 민심은 기로에 놓인 ANC에 대한 중요한 평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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