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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홍대 앞을 망치는 '4적'

도시

by 정소군 2012. 7. 13.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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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표시는 프랜차이즈 상가 등 상업자본이 침투한 주요 대로들. 홍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서교로는 이미 각종 커피전문점 및 저가 화장품 체인점, 의류 브랜드 상가, 이동통신 3사의 대리점 등으로 빽빽이 들어선 상태다. 이 같은 추세는 와우산로 등 인근 주요 대로변으로 확장돼 가고 있는 중이다. 인포그래픽 _ 박지선 기자

 

 

 늦은 밤, 부담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던 ‘삼거리포차’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높은 신축건물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횡단보도 건너 맞은편에는 한때 노란색의 ‘레코드포럼’ 간판이 붙어 있던 야트막한 건물이 허물어질 채비를 하고 있다. 공사가 끝나면 그곳에는 베니건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흉가처럼 변한 옛 레코드포럼 앞을 지나쳐서 피카소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동남부동산’이 나온다. 홍익대 안상수 교수가 만들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카페 ‘카페 일렉트로닉스’가 있던 자리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어울마당길을 조금 내려오면 ‘X세대 김밥’이 있던 자리. 인디밴드 공연을 감상하며 신나게 뛰어놀고 난 후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르던 곳이다. 허기를 채워주던 분식점은 이미 휴대폰 가게로 바뀌었다.

 

홍대 앞은 지금 공사 중이다. 매캐한 시멘트 냄새와 귀를 찌르는 드릴 소리가 어딜 가든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걷다 보면 블록마다 한두 개 건물에는 반드시 공사용 가림천막이 쳐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통임대합니다’란 현수막이 나부낀다.

 

 

▲ 골목까지 침투한 휴대폰 대리점
건물주 재개발 부추기는 업자들
차익만 챙겨 떠나는 뜨내기 장사
지역문화 형식적 지원하는 구청

 

‘을사오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홍대 앞을 망치는 4적’도 있다. 상업 자본의 고도화, 부동산 업자의 임대료 인상 부추김, 뜨내기 업자의 권리금 장사, 지자체의 무관심과 전시행정이 그것이다.

 

홍대 앞 ‘동네 잡지’를 표방하는 ‘스트리트H’ 장성환 발행인은 “흔히 적조현상을 바닷물 오염의 척도라고 하는데 나는 문화적 적조현상이 바로 휴대폰 대리점과 부동산 사무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 대리점은 지역의 취향을 전혀 살릴 수 없는 자기 복제적 특징을 갖고 있고, 부동산은 말 그대로 재개발과 권리금 장사를 위한 곳”이라며 “가장 비문화적인 업태들”이라고 강조했다. 휴대폰 가게나 부동산이 보이기 시작한 골목은 조만간 프랜차이즈로 대표되는 상업자본에 의해 점령당할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으면 같은 블록의 땅값이 동반상승해 주변 가게의 임대료까지 같이 뛰기 시작한다. 삼거리포차가 허물어지고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닭날다’ 등이 있는 뒷골목 일대의 임대료도 이미 한바탕 들썩였다.

 

그 뒤에는 부동산 업자들의 부추김이 있다. 싼 임대료를 찾아 오래된 뒷골목 연립주택의 반지하 가정집을 임대해 개조한 한 카페 주인은 “부동산 업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들을 서로 붙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으면 더 비싼 임대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서로 건물주를 꼬드기는 통에 이 연립도 언제 허물어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카페 ‘비하인드’의 김영혁씨는 “임대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다 보니 뜨내기 권리금 장사꾼들이 판을 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홍대 앞을 지켜온 가게들은 동네 커뮤니티와 연계해서 무언가 유기적인 문화운동을 하려고 시도하지만, 뜨내기 장사꾼들은 비어 있는 상가에 들어가서 짧게는 석 달 동안 장사하다가 권리금 차익만 챙겨 빠져버린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무관심도 홍대를 망치는 데 한몫한다. 장성환 발행인은 “마포구청이 홍대 앞에 만들어 놓은 대형 게시판이 두 개 있는데, 둘 다 쓸모없는 옛날 지도가 걸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홍대 정문 앞의 게시판을 보면 이미 사라진 레코드포럼이나 삼거리포차가 여전히 남아 있다. 홍대의 변화와 위기를 지자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모여 지역이 이뤄지는 건데 정부나 지자체는 늘 자신들이 무언가 만들어 놓고 그 안을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마포구가 홍대 앞에 지정한 ‘걷고싶은 거리’도 실상 가보면 그저 특색 없는 먹자골목에 지나지 않는다.

 

장씨는 “홍대에는 아직 골목골목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작은 가게들이 남아 있다”며 “그러나 나지막한 건물들을 밀어내는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취향과 특색은 중요치 않고 결국 ‘돈을 더 내고 이 건물에 남을래, 아니면 떠날래’만을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임대료 폭등하자 합정·상수역 근처로… “사라진 그 카페로 과거여행 하고싶어”

 

 ㆍ‘이리카페’ 운영 김상우씨

 

 홍대 인근 상수동에서 ‘이리카페’를 운영하는 김상우씨(38)는 “서교동 근처는 마음 놓고 못 지나다닌다”고 했다. 서교동에서 카페를 운영했던 그는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구해 2년 전 이곳으로 밀려왔다. 2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인터넷 위성지도를 검색해 옛 카페 주변이 얼마나 변했는지 찾아보곤 합니다. 남들은 프랑스 같은 좋은 데로 여행 가고 싶다는데, 나는 그 카페로 과거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내가 일궜던 그 공간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김씨는 인디밴드 ‘허클베리핀’의 초기 멤버였고, 지금은 ‘몸과마음’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2004년 서교동에 카페를 연 계기는 물감 살 돈이나 벌어보자는 것이었다. 공장 사무실로 쓰이던 공간을 싸게 빌려 자신만의 취향으로 꾸몄다. 손님이 없으면 카페를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습하고, 시도 썼다. 이리카페에서는 무려 200회 이상의 각종 공연과 60회 이상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리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건물주가 찾아왔다. 자신의 조카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해야겠다며 무조건 방을 빼라고 했다. 버려진 공장 사무실을 문화공간으로 꾸미는데 들인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은 전혀 보상받지 못했다.

 

“예술은 원래 돈을 못 버는 일이라 싼 곳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술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면 자본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오고. 그래서 임대료가 비싸지면 결국 예술가들은 다시 떠날 수밖에 없죠. 설사 그게 순리라 하더라도, 문제는 그 사이클이 너무 짧고 빠르다는 겁니다. 제가 상수동으로 이사온 3년 동안 옆의 가게들이 벌써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몰라요.”

 

카페 ‘비하인드’의 임태병 사장은 홍대의 장점을 ‘선’이 아닌 ‘면’이라고 말했다. 강남 가로수길의 소호가게들은 직선 대로를 프랜차이즈 상업자본에 점령당하자 그곳을 떠나 아예 흩어졌다. 하지만 홍대는 대로를 점령당하더라도 골목이나 옆으로 밀려나갈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홍대 앞에서 쫓겨난 이리카페 같은 곳들이 인근 합정역, 상수역 근처로 밀려나면서 오히려 ‘홍대 앞’이란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홍대의 ‘서부개척자’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다는 것이다. 홍대 사람들은 앞으로 3년 내에 당인리 발전소까지 모두 개발이 끝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임대료 때문에 아예 홍대를 떠나 문래동 창작촌으로 둥지를 옮긴 일부 가난한 예술가들은 그 일대가 재개발 소문이 돌면서 임대료가 폭등, 그곳에서마저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김상우씨는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소비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찾는다”며 “임대료를 마구 올리다가 홍대가 특색없는 상업지구로 전락하면 결국 마지막 피해자는 집주인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문인들이 모여들면서 카페 문화가 번성했던 명동과 인사동이 이제는 관광객들만 가는 장소로 변해버린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진·김여란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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