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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화·특성화·다양화 ‘장밋빛 정책’ 3년… MB교육, 길을 잃다

교육복지

by 정소군 2010. 12. 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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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고 미달사태 등 학교·학생 혼란 가중

ㆍ사교육비 부담 커지고 교육주체 갈등도 확산 “정부가 원망스럽다”



정시모집 원서접수 마감을 하루 앞둔 22일, 길고 긴 입시 전쟁의 끝을 눈앞에 두고 홀가분해질 법도 하건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올 하반기 이후 그의 주된 일과는 사교육 입시업체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것이었다. 2500개나 되는 대입전형 가운데 어느 것이 큰아이에게 유리한지 판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시전형은 무조건 넣고 보는 것’이라는 말에 큰아이는 대학 5곳에 ‘묻지마 지원’을 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EBS 교재만 봐도 수능 대비는 충분할 것이라고 정부는 말했지만 문제가 어려워서 아이의 수능 성적은 기대보다 낮게 나왔다.


작은아이의 고입 역시 등한시할 수 없었다.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는 물론 일반고 지원조차 어디를 1지망으로 써야 할지 막막했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데도, 시간을 쪼개 구청이나 사교육업체에서 여는 학교 설명회까지 쫓아다녔습니다. 학부모 선택권이 많아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잘 알아야 잘 선택하는 것 아닌가요. 학부모에게 부담을 다 떠넘기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학생도 괴롭다. 이제 고교에 올라가는 김씨의 둘째아이는 올 겨울방학 때 다녀야 할 학원이 두 개 더 늘었다. 기존에 다니던 영어·수학 학원에다 논술과 컴퓨터 학원이 추가된다. 큰아이의 입시를 경험하면서 김씨가 깨달은 것은 둘째만은 미리부터 준비를 시켜야겠다는 것이다. 논술과 수능, 내신 모두 중요한 만큼 이 부분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여기에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해 아이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특기로 삼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학교나 교사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강력한 자율형사립고 정책 드라이브에 힘입어 자율고로 전환한 용문고는 최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학교는 모집정원이 455명이지만 추가모집을 거치고도 지원자가 158명밖에 안돼 34.7%의 충원율에 그쳤다. 입학생 학부모들은 “전학가겠다” “그냥 일반고로 전환하라”고 항의했다. 지난 19일 열린 긴급 학부모설명회에서 교장은 “(미달 사태로 재정난이 우려되고 있지만) 자율고 지정을 홍보하며 내걸었던 모든 조건을 그대로 지킬 테니 믿고 격려해달라”면서 학부모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흘렀다. ‘MB 교육’이 내건 새 정책이 휘몰아치듯 한꺼번에 도입됐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교육 현실은 파열음뿐이다.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의 대립은 첨예해지고, 진보·보수 교원·학부모단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상반된 의견을 쏟아낸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믿은 대학생들은 장학금 예산 대폭 삭감으로 당장 내년부터 휴학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정부의 자율화 정책으로 대학들의 권한은 막강해졌지만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사교육을 억누르겠다며 입시학원들처럼 수능 가채점 등급점수를 발표하면서도, 입학사정관제 규정을 어긴 대학들은 감싸고 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장밋빛 정책들이 교육현장에서 길을 잃고 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ㆍ‘MB교육’ 3년…드러나는 실상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내놓은 각종 정책은 일련의 흐름 속에 완결성을 가지고 짜여진 ‘패키지’다. 그러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할 이 정책들은 파편화했고, 개별 정책마저도 부작용이 커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입시경쟁과 사교육, 교육 양극화 등 기존의 고질적 병폐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크게 2개 축으로 이뤄져 있다. ‘2009 개정교육과정(수업시수 감소)·EBS 연계정책(수능 부담 경감)→학습부담 낮춰 창의력 신장 교육→잠재력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로 이어지는 한 축과, ‘고교 다양화(자율형사립고·기숙형공립고 등)·학업성취도 공개→학부모 선택권 확대→경쟁을 통한 공교육 강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축이 그것이다. 이 모든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사교육 없이 학교 교육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교육현장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다. 국·영·수 수업시수 확대로 변질된 교육과정 개정,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EBS 연계정책은 학생들의 학습부담 증가로 이어져 사교육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성적보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중시하겠다는 입학사정관제는 학생들의 ‘스펙’ 쌓기 경쟁과 공정성 시비로 이어졌다. 학교 다양화 정책의 핵심인 ‘자율형사립고’는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를 빚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기본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김승현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는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정권을 창출한 만큼, 평준화에 대한 반감과 학력 중심 경쟁을 선호하는 교육관점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관점을 갖고 있음에도 자유로운 창의·인성교육과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친서민 정책을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어느 지점에선 학력 중심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달 사태를 빚은 자율형사립고는 그 단적인 예다. 학교 서열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추첨제를 도입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배려 전형도 만들었지만, 자율고의 수요층은 중산층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일반고 3배의 등록금을 감당하는 대신 입시경쟁에 최적화된 수월성 교육을 요구하는 층이다. 자율고 수가 일정 규모 이상 늘어나면 결국 수요층 제한이라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앞뒤가 바뀌고, 지나치게 성급하게 추진됐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학습부진아나 낙후지역을 찾아내 지원하겠다며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신설했지만, 지역의 교육인프라를 종합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예산 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 단위 점수부터 공개함으로써 책임을 개별 학교와 교사 개개인에게 묻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신종호 서울대 교수는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 교수는 “입학사정관제는 시행 초기인 만큼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성급하게 확대하는 바람에 공정성 시비를 낳게 됐다”며 “5~10년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도입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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