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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의 사이시옷]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2019.1.8)

칼럼

by 정소군 2022. 3. 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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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민 박준경씨가 남긴 유서. 빈민해방실천연대 제공.

브라질 동북부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사실 그곳까지 간 이유는 버림받은 마을을 살려낸 공동체 은행의 성공사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살던 곳은 원래 해변가에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1970년대 초 정부가 해변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후 이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뿌리째 뽑혀났다. 사람들은 물도, 전기도, 집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집단 강제이주를 당했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들은 주민회를 조직하고 직접 돌을 날라 학교를 세웠다. 집을 짓고, 수도를 놓고, 전기를 연결했다. 공동체 은행에서 무담보로 소액대출을 받아 기술을 익혔다. 지역 경제가 조금씩 선순환을 이루기 시작했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할머니는 그 마을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황망히 그곳까지 빈손으로 밀려나 천막을 짓고 살아야 했던 시절의 옛 기억을 더듬었다. 공동체 은행에서 배운 재봉기술과 소액대출이 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할머니가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추임새처럼 “그건 대략 몇년도쯤의 일이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의 지난 삶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좀 더 생생히 보여주려 했던 것이니 불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한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도 받은 양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주 대략이라도 좋아요. 몇십년대였다고만 이야기해주셔도 돼요.”

 

그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단 하나의 시점도 대답하지 못했다. 연세가 많아 혼동하거나 헷갈린 것이 아니었다. 마치 연도에 대한 감각이 백지 상태인 것 같았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에게 오히려 더 당혹해한 건 나였다.

 

나는 1980년대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2000년대에 직장인이 되었다. 나의 삶은 새로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시작과 마무리라는 단계를 거쳐가며 시간과 함께 앞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할머니 삶의 8할은 ‘어제’가 없는 삶이었다.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인 똑같은 하루하루의 반복. 할머니의 삶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삶은 언제나 고달팠다. 화려한 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변 관광지와 그곳에서부터 불과 23㎞ 떨어진 그 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딴 세상 같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이 끝없이 반복돼 온 그에게 해가 바뀌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으리라.

 

“전 마포구 아현동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지난해 12월3일 서울 망원유수지에서 철거민 박준경씨(37)의 유서가 발견됐다. 그가 살았던 동네는 저소득층이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모여드는 도심 속 달동네 같은 곳이었다. 재건축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진 후 한때 2357가구가 살았던 그 동네는 폐허가 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10년 동안 세들어 살았던 집에서 지난해 9월 쫓겨났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으로는 서울 하늘 아래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철거촌을 떠나지 못하고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빈집을 전전해야 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 한 줄의 문장 속에 담겨있는 절망의 무게가 가슴속에 박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말은 사실 ‘오늘 같은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우리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더 나아질 내일을 꿈꾸면서 다가올 새해 계획을 짠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움직여왔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당장 눈앞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 ‘내일’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에 갇혀 새해를 빼앗긴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게 새해를 빚지고 있다.

 

지금의 법대로라면 2019년에도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들은 박준경씨처럼 이주비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24세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씨가 사망했지만, 태안화력발전소 1~8호기 컨베이어벨트는 해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박준경과 김용균을 잃은 2018년에 멈춰 서 있다.

 

어제가 지나가고 오늘이 끝났다고 해서 내일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어제도 없다. 새해가 새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지난 해들이 과거가 될 때만이다.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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