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저임금 노동’ 한계에 부딪힌 동남아] 군, 삼엄한 감시… 캄보디아 여공들 공장 앞 좌판서 점심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14. 1. 14. 22:00

본문

ㆍ‘유혈진압’ 캄보디아 현장 1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캄보디아 의류노동자 시위가 유혈진압된 후 열흘이 지난 14일. 프놈펜은 평화로워 보였다. 캄보디아에서 20여년 만에 발생한 유혈사태를 앞다퉈 보도하던 TV도 한국과 태국의 드라마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내보내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국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의류 공단에서 벌어진 시위 유혈 진압이 노동자 5명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택시 창밖으로는 ‘코리아 패션’이라는 한글 간판이 그 옆에 붙은 한국 연예인 사진과 함께 스쳐지나갔다.

한국에서 온 손님임을 눈치챘는지, 팝송을 흥얼거리던 택시기사 누온 바나크는 “여기선 한국 기업이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덕분에 한 달에 500달러(약 53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공장노동자 최저임금인 80달러보다 6배 이상 많은 금액을 버는 그에게 의류노동자들의 요구는 다소 먼 이야기다.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카나디아 공단의 노동자들이 14일 좌판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열흘 전의 시위 유혈진압 이후 겉보기엔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 공단 곳곳에 군인들이 상주하면서 긴장감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프놈펜 _ 정유진 기자


하지만 최근 최저임금 시위에 대해 묻자 그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캄보디아는 변화를 원하고 있다”면서 “유엔 특별조사관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왔다니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겉모습과 달리 유혈진압은 중산층인 그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긴 듯했다.


 ‘최저임금 시위’ 여공들 생활고에 대부분 공단 복귀
중산층 택시기사도 “큰 충격” “유엔 조사관 왔다니 기대”

프놈펜 외곽 카나디아 공단으로 가는 길은 차가 몹시 막혔다. 끊임없는 공장 부지 확장공사 때문인지 모래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셀 수 없이 도로를 오갔다. 점심시간을 맞은 공단은 서넛씩 짝을 지어 식사를 하러 나오는 노동자들로 붐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유혈진압 직후 한때 인근 공단 노동자 10만명 중 90%가 경찰의 탄압을 피해 고향으로 도망갔지만, 한 푼이 아쉬운 여공들은 대부분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여공들은 공단 정문 근처 좌판에서 점심을 사먹고 있었다. 10대의 앳된 여공이 손가락만한 고구마 5개가 든 비닐봉지를 사들고 그늘에 앉았다. “이게 점심이냐”고 묻자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는 다른 여공들이 도시락을 나눠먹고 있었다. 각자 풀어놓은 비닐봉지 안에는 작은 맨밥 덩어리와 채소들이 섞여 있었다.

2011년 캄보디아에서 여공 100여명이 근무 중 단체로 기절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봉급을 아끼기 위해 이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은 식비다. 이 때문에 비위생적인 길거리 음식을 먹다가 영양실조로 기절한 것이다. 노동단체 ‘베터 팩토리즈 캄보디아’ 조사에 따르면 의류노동자들은 월급의 80%를 집세, 수도·전기요금 등 기본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시골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 그러니 저축은커녕 식비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

무섭게 치솟는 물가는 또 다른 공포다. 2년 전만 해도 2.5달러였던 생선은 현재 3.75달러로 뛰어올랐다. 현지 보건당국 조사 결과, 캄보디아 여성 다섯 중 한 명은 저체중이고 40%는 빈혈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 대학생 “이대론 희망 없다… 형들은 돈 벌러 태국행”

식사를 마친 여공들은 줄지어 공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발포가 일어났던 구역에는 여전히 군용 지프가 줄지어 서 있고, 총을 든 군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서 있거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순식간에 몰려와 제지했다. 여공들은 말을 걸면 업체와 군인들을 의식한 듯 손을 내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공장 안으로 사라졌다.

당국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문제는 사회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조 사무실 앞에서 만난 대학생 헨(21)은 “이대로라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시골 농가 출신인 그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집세와 전기·수도요금 30달러를 내고, 남는 돈을 모아 한 학기에 400달러가 넘는 등록금을 낸다. 식비로는 하루 0.5달러만 쓴다. 그의 형 둘은 임금이 하루 10달러로 캄보디아의 3배인 태국에 돈을 벌러 갔다. 헨은 “캄보디아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이대로라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에 진출한 봉제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캄보디아에서 사업한 지 15년째에 접어든 가원어패럴 이연우 사장은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며칠 전 월급날이 돌아왔는데 융통할 수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겨우 맞췄다”고 호소했다. 캄보디아의 최저임금은 최근 1년 새 61달러에서 80달러로 인상됐다. 그는 “정부에 등록된 노조만 80여개이고, 한 업체에 노조가 2개 이상씩 된다”면서 “수익성이 떨어져 문 닫는 공장들이 느는 마당에 현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업주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