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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가는 푸티니즘...나발니가 결정타 될 수 있을까

국제뉴스/유럽과 러시아

by 정소군 2022. 3. 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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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수감으로 촉발된 시위가 균열이 가기 시작한 ‘푸티니즘’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을까.

서구 사회에 비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재자 이미지가 강하지만, 러시아 국민들로부터는 망해가는 나라를 살려놓은 ‘구세주’ 같은 존재로 여겨져왔다. 친서방 정권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극심한 부패와 혼란으로 모라토리엄까지 맞았던 트라우마 때문에 러시아 국민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야당 지도자보다는 푸틴이 낫다고 여겼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러시아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왔고, 옐친 시대의 친서방 정치인들에 비하면 개인 부패와 비리도 많지 않아 보였다. 크림 반도 합병 후 ‘강한 러시아’의 자부심을 고취시킨 러시아의 정책들은 ‘푸티니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지난   25 일(현지시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사진)과 ‘푸티니즘’을 상징하는 푸틴의 흉상.   AP 연합뉴스·유튜브 캡쳐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푸티니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조짐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푸틴이 당장 급격한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 러시아의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65%로 여전히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서도 푸틴은 55%를 기록하며 2위(9%)와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높아보이는 푸틴의 지지율은 한때 86%까지 치솟았던 과거에 비하면 크게 낮아진 것이다. 푸틴에 대한 신뢰도는 50% 아래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 경제가 코로나19 대유행과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루블화의 가치는 20% 가량 떨어졌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가처분 소득은 3% 가량 줄어들었는데, 자유유럽방송은 “전문가들은 그보다 1~2%는 더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크림 합병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기 전인 2013년과 비교하면 10% 가까이 떨어졌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러시아 정부가 마트의 필수품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그만큼 심해진 것을 반영한다.

푸틴이 사실상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해 무리하게 개헌을 추진했던 것도 그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지난해 7월 통과된 개헌안에는 ‘개헌 이전의 대통령직 수행 횟수를 0회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삽입돼, 원래대로라면 3연임 금지로 다음번 대통령 출마가 불가능한 푸틴에게 2036년까지 장기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경제 칼럼니스트인 보리스 그로조브스키는 “개헌이 푸틴의 개인적 이익 때문에 비롯된 것이란 이미지가 모두에게 각인됐다”고 자유유럽방송에 말했다.

지난   23 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시위에서 시민들이 진압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야당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했다.   /AP 연합뉴스


모스크바타임스는 올해 9월 열리는 국가 두마(러시아 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푸틴의 의회 장악력도 조금씩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2 정당인 공산당 내에서 푸틴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푸틴도 싫어하는 극우 정당들 역시 점점 세력을 넓혀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유럽방송은 푸틴이 집권 이후 거의 매해 빠짐없이 진행해 왔던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지난해 생략했다는 데서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푸티니즘의 징조를 찾아내기도 했다. 푸틴은 이 생중계 프로에서 국민들로부터 가감없는 불평 불만을 접수한 후 함께 배석한 관료들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관료 위의 구름 같은 존재로 이미지메이킹 해왔다. 하지만 푸틴 정권 자체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더 이상 관료와 자신을 분리하기 어려워지자 ‘국민과의 대화’를 기자 간담회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지난   17 일(현지시간) 독일에 머물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러시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독극물 테러로 혼수상태에 놓였던 나발니는 독일의 병원에 머물며 치료를 받아왔다. 나발니는 러시아로 돌아오자마자 체포돼 구금됐다.   /AP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수감으로 촉발된 시위가 푸틴에게 결정타가 될 수 있을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에도 반정부 시위는 수차례 열렸지만 푸틴에게 직접적인 위협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러시아 전역에서 열린 시위에 10만여명이 참여하면서 2011~2012년 반정부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한데다, 나발니가 흑해 연안의 호화궁전과 혼외 자녀 의혹을 제기하면서 푸틴의 개인 부패비리를 정조준하고 있어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 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시위에 참가한 변호사 에브게니야 라고지나는 “우리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한편에선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빈곤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나발니 체포는 시위의 도화선에 불과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권위주의 정부와 부정부패에 지친 사람들에게 나발니가 스파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여전히 푸틴은 러시아에서 대체불가능한 정치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면서도, 정치평론가인 콘스탄틴 칼라체프의 말을 빌어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20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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