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등 소수 종교인들도 이라크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 2004년 알카에다 계열의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기독교 교회를 파괴했을 당시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한 이라크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일제히 비난하며 한 목소리로 했던 말이다.
시아와 수니가 반목하고 소수 종교 공동체 야지디와 기독교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모습에서 ‘톨레랑스(관용)의 나라’였던 과거의 이라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이라크는 중동에서 가장 많은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던 국가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분열된 정치와 그 틈을 비집고 세력을 확장한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이 ‘문화와 종교의 용광로’였던 이라크를 갈갈이 찢어놓고 있다.
10여년 전까지 무슬림·흑인·소수종교 조화… ‘문화·종교 용광로’
이라크는 오늘날 서구 문명의 토대인 고대 문명의 요람이다. 기원전 586년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빌론 왕국이 현재의 이라크이고,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도마가 기독교를 전파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해 온 곳 또한 이곳이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에서 유래한 야지디, 바하이 등 옛 종교의 원형을 간직한 소수 공동체들도 이라크의 국경 안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35종류가 넘는 이라크의 다채로운 민족 구성원 중에는 흑인도 포함돼 있다. 9세기 무렵부터 아랍 중개상인들에 의해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의 후예들은 천년 넘게 이라크에 뿌리를 내려왔다.
이슬람국가(IS)가 지난달 23일 파괴한 이라크 북부 모술의 기독교 유적지 ‘요나의 무덤’ 잔해를 주민들이 옮기고 있다(위쪽). 수니파 극단조직인 IS는 모술의 시아파 사원인 알쿠바 후세이니야 모스크(아래)도 폭파시키고, 파괴 장면을 지난달 웹사이트에 올렸다. 모술 _ AP연합뉴스
이라크인들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에 큰 자부심을 가져왔다.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알가이라니 우에르 영국 런던대 연구원은 “어렸을 적 내 아버지에게는 세 명의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이었다”면서 “이는 조화로웠던 이라크의 과거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내셔널지오그래피에 말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덕분에 많은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유적들은 종교 화합의 현장이기도 했다. 알리 마무리 호주 가톨릭대 박사는 사회현상 분석지 ‘더컨버세이션’ 기고에서 “‘제르지스(성 게오르기우스)의 무덤’이나 ‘요나의 무덤’ 같은 곳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무슬림인들에게도 소중한 예언자의 성지”라며 “무슬림들이 기독교 교회에서 기도를 하거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축제를 함께 즐기는 모습은 이라크에서 흔한 풍경이었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기독교인인 타리크 아지즈가 외무부 장관과 부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바스라 일대에 살고 있는 흑인들은 2009년 지방선거 때 8명의 후보를 내기도 했다. 수니파와 시아파 역시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는 구분 없이 사이좋게 지내왔다. 교파를 초월해 자유로운 혼인이 이뤄졌기 때문에 대가족 안에는 수니파와 시아파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미 군정에 반발한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세력을 확장하고, 종파갈등을 조장한 누리 알말리키 정권이 등장하면서 이라크의 자랑은 산산히 부서질 위기에 처했다. 2003년 150만명에 달하던 기독교인은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공격을 피해 이라크 밖으로 뿔뿔이 도망가 지난해 35만명까지 줄어들었다. 만다야교 공동체도 2003년 50여만명에서 현재 5000명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알카에다·IS 등 무장단체 탄압, 기독교 급감… 종교 유적 잇달아 폭파
지난 10여년 동안 이미 조금씩 사라져 온 이라크의 소수민족·종교들은 알카에다보다 더 극단적인 IS의 등장으로 ‘제노사이드’ 위기에 놓였다. 수니파 외의 다른 종교는 모두 이단으로 간주하는 IS는 현재 기독교 유적인 제르지스와 요나의 무덤은 물론 시아파 사원인 알쿠바 후세이니아 모스크를 폭파하는 등 유적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다. 신자르산 속에 포위된 야지디의 운명은 이라크 문화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이라크의 평범한 무슬림들은 IS가 다양성을 존중해온 이라크의 가치관을 훼손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IS가 모술에서 기독교인들을 쫓아내자, 기독교인들과 조화롭게 공존해 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모술의 수니파 주민들이 크게 분노했다”고 전했다. 중동 매체인 온이슬람은 “IS에 쫓겨난 기독교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슬림 구호단체와 주민들이 앞장서서 옷과 식량을 내어주고 이들이 대피할 천막들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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