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말 양적완화를 종료한다. 2008년 9월부터 3차에 걸쳐 진행된 양적완화로 이제까지 미 금융시장에 풀린 돈은 모두 약 4조달러(약 4000조원)에 달한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세계 금융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단행된 전대미문의 이 실험적 조치는 과연 성공을 거뒀을까.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국채나 은행 채권 등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 공급을 늘리는 통화정책이다. 한마디로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시장에 푼다는 의미다.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이 2001년 처음 시도했지만,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돈을 뿌려댄다는 뜻의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당시 미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2010년 2차 양적완화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양적완화를 통해) 침체에 빠진 주택·주식시장을 회복시킴으로써 소비심리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지출이 늘어나면 기업 이익이 증가하고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실업률 최저 불구 실질임금 하락 ‘외화내빈’
버냉키의 말대로 돈을 푼 덕분에 2009년 2월 7000대 초반까지 하락했던 다우지수는 지난 9월 사상 최고점인 17161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가격도 금융위기 전인 2006년 이후 가장 빠른 상승 속도로 회복했다. 자산가격이 금융위기 이전으로 회복된 상황에서 9월에는 실업률도 6년래 최저 수준인 5.9%까지 낮아졌다.
수치만 놓고 보면 양적완화는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체감경기에서 버냉키가 약속한 ‘낙수효과’와 ‘선순환’은 말뿐이었다. 미 정부는 지난 3개월간 일자리가 22만4000개 늘어났다고 발표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지난 5년간 실질임금은 되레 0.3% 하락했다.
양적완화가 종료되고 시장에 풀어놓은 달러를 회수하기 시작하면 달러는 강세로 돌아서게 된다. 더 이상 달러 약세로 인한 수출 호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 내수도 불안하다.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후폭풍도 고민거리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신흥국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도한 연준의 실험은 양적완화를 유산으로 남겼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둘러싼 논란과 초인플레이션이란 숙제가 남아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