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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의 탐욕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2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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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깃털 도둑
ㆍ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박선영 옮김
ㆍ흐름출판 | 428쪽 | 1만6000



‘깃털 중독자’의 일탈범죄로 치부될 사건 5년간 추적…인류 역사를 소설처럼 재구성한 논픽션

아름다움을 ‘소유’하려고 다른 존재를 약탈한 인간, 지구의 아름다움도 하나씩 영구 삭제 시켜


소설가 김중혁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책은 깃털에 대한 미시사 논픽션이며, 독특한 탐정이 활약하는 탐정 소설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기가 막힌 범죄 스릴러다. ‘덕후’들의 세계를 다룬 매뉴얼북인가 하면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인류학 책이기도 하다. 가벼운 깃털 하나에 묵직한 인간의 역사가 빼곡하게 담겼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의 저자는 자칫 ‘깃털’ 오타쿠의 가벼운 범죄로 묻혀버릴 뻔한 사건을 5년 동안 취재한 끝에 깃털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 탐욕으로 얼룩진 인류의 역사를 한 편의 뛰어난 소설처럼 재구성해냈다.

이야기는 2009년 발생한 영국 트링의 자연사박물관 도난 사건에서 시작된다. 한밤중 유리창을 깨고 박물관에 침입한 도둑이 훔쳐간 것은 299점의 새가죽이었다. 범인은 열여섯 살에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런던 왕립음악원에 입학한 천재 플루트 연주자 에드윈 리스트. 그는 플루트뿐 아니라 의외의 분야에서도 천재성을 드러냈는데, 그것은 바로 연어 낚시에 사용되는 플라이 타잉이었다(깃털 등의 재료를 이용해 작은 곤충 모양으로 만든 낚시용 미끼를 ‘플라이’라고 한다. 이를 만드는 것을 ‘타잉’한다고 하고, ‘타잉’하는 사람을 ‘플라이 타이어’라 부른다).

말레이제도에서 8년간   12 만여종에 달하는 표본을 수집하고 돌아온 직후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흐름출판 제공



에드윈은 트렁크 안에 가득 욱여넣은 새가죽들을 자신의 기숙사 방 안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 그중에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왕극락조와 케찰은 물론 현재까지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개체수가 250마리도 채 되지 않는 밴디드코팅거, 이미 멸종된 여행비둘기까지 포함돼 있었다. 에드윈은 책상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새가죽들을 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마음껏 깃털을 뽑기 시작했다. 그가 훔쳐온 표본 중 상당수에는 모두 같은 사람의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A R 월리스. 찰스 다윈과 같은 시대를 살았으며, 다윈과 별개로 독자적인 관찰과 연구를 통해 ‘적자생존’의 이치를 발견해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였다. 에드윈이 깃털을 뽑으며 몸통과 머리, 날갯죽지를 분리해 버린 이 새가죽들은 월리스가 해적단과 싸우고,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흡혈파리에 물려 다리가 곪고, 독사와 독충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지켜낸 소중한 표본들이었다.

월리스는 죽기 전 오랜 지구의 역사가 손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물관에 최대한 많은 표본을 소장해달라고 영국 정부에 간곡히 요청했다. “이 새가죽들은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분명 활용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저히 보호하지 않으면, 우리는 먼 훗날 돈에만 눈이 먼 무지한 조상으로 후손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1913년 월리스가 죽고 난 후 대영박물관은 그의 표본을 사들였다.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의 공습으로 파괴될 위험에 처하자 큐레이터들은 월리스의 새가죽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트럭에 실어 영국의 시골지역으로 옮겼다. 에드윈이 침입했던 트링의 자연사박물관은 그중 한 곳이었다.

월리스가 자신의 새가죽을 보호해달라고 간곡한 유언까지 남긴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화려한 깃털로 부와 아름다움을 과시하려 했던 인간의 욕망, 이른바 ‘깃털열병’ 때문에 수억마리의 새들이 인간에게 살해됐다. 에르메스 가방이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미국과 유럽 여성들은 최신식 깃털을 구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새 한 마리의 깃털이 통째로 모자에 올라 있어서 마차나 자동차를 탈 때면 머리를 창밖에 내놓아야 할 정도였다. 유행을 선도하려면 극락조, 큰부리새, 케찰 정도는 되어야 했다.

다윈과 월리스는 종의 출현과 멸종을 설명하는 단어를 찾기 위해 숲과 밀림을 헤맸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은 ‘멸종’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비웃었다. 신이 창조한 지구에서 무엇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1883년과 1898년 사이 미국 26개 주에서 조류의 개체수는 거의 반으로 줄었다.

집까마귀, 푸른채터러, 케찰 등이 포함된 이국적인 희귀 새들의 깃털이 뒤섞여 있는 사진. 플라이 타이어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가진 플라이 타잉 재료를 자랑하며 ‘깃털 포르노’라고 표현했다. 흐름출판 제공



미국과 영국 여성들 사이에서 깃털 매매에 반대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영국 여성인 에밀리 윌리엄슨은 조류 학살을 막기 위해 ‘깃털연맹’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깃털은 잔인함의 상징!”이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존립의 기로에 놓인 깃털업계는 깃털연맹을 “역겨운 감상주의자들”이라고 헐뜯었지만, 최후의 승리는 환경운동가들에게 돌아갔다. 미국과 영국은 깃털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잇따라 통과시켰다. 규제가 강화되고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깃털 모자의 유행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금지된 것일수록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소유하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탐욕은 완전히 제어되기 힘들었다. 곧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새로운 직종”이 나타났다. 야생동물 밀거래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의 감시망이 코뿔소 뿔과 코끼리 상아에 집중돼 있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불법적으로 희귀 깃털을 거래하며 깃털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을 구현하는, 연어 플라이를 만드는 이들이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저 앞이 구부러진 금속 고리에 미끼를 달아 긴 줄에 묶은 다음 물밑으로 잘 던지기만 하면 된다. 연어를 좀 더 자극하려면 바늘에 깃털 한쌍을 묶어주는 것이 좋다. 사실 개털이나 닭털만 묶어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영국 귀족 남성들에게 연어 플라이는 아내들의 깃털 모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히말라야 무지개꿩, 아마존 마코앵무새 등 남들보다 더 희귀하고 화려한 깃털을 갖는 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때 사용된 새들 대부분은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돼 거래가 금지됐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후에도 플라이 타이어들은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의 플라이 깃털에 집착했다. 플라이를 만드는 사람이 늘수록 푸른채터러나 집까마귀, 케찰 혹은 극락조 같은 새의 가치는 점점 올라갔다. 플라이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푸른채터러 깃털 150개가량의 가격이 2000달러(약 240만원)에 달했다.

에드윈이 박물관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새들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구하기 힘든 깃털을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평가받는 타이어들의 세계에서 그가 거의 왕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박물관을 턴 플라이 타이어는 에드윈이 처음도 아니었다. 트링 사건이 있기 몇년 전 독일 슈투트가르트와 프랑크푸르트의 자연사박물관 두 곳 이상에서 집까마귀와 푸른채터러가 도난당했다. 이때도 용의자로 지목된 범인은 미국인 플라이 타이어였다.

결국 에드윈은 검거됐지만, 그가 가져간 새 299마리 중 이름표까지 달린 온전한 형태로 기숙사에 남아 있던 것은 102마리뿐이었다. 나머지 표본은 이미 에드윈이 깃털을 얻기 위해 망가뜨리거나, 이베이를 통해 다른 타이어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버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경찰과 박물관은 나머지 표본을 포기하기로 했다. 되찾을 가능성이 낮은 데다,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이미 훼손돼 과학적 활용가치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박물관으로 돌아오지 못한 새가죽의 행방을 끝까지 추적해보기로 했다. 에드윈에게서 새가죽을 산 사람들은 그 새가 박물관에서 훔친 물건이란 걸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정보를 얻기 위해 플라이 타잉 심포지엄에 참석한 저자는 그곳에서 멸종위기동물보호협약(CITES)으로 보호받는 새들이 버젓이 거래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타이어들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깃털 모자에서 뽑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새들은 밀수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큰극락조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간 모자를 쓰고 있는   20 세기 초 여성의 모습(위). 왕극락조와 케찰 깃털로 만든 연어 플라이. 흐름출판 제공



저자는 수소문 끝에 에드윈에게서 집까마귀와 푸른채터러를 사들인 플라이 타이어를 찾아낸다. 하지만 그 플라이 타이어는 박물관에 새가죽을 돌려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저자의 제안을 끝내 거부한다. “박물관이 그 새가죽들로 인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설명해준다면 돌려드리죠. 에드윈이 박물관에서 훔친 것은 잘못이지만, 옷가게에서 바지 한 벌을 훔친 정도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링 박물관의 새가죽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타이어 역시 이렇게 반문했다. “환경과 동물을 생각한다면 사실 플라이 타이어보다 육식이 더 나쁜 거 아닌가요?”

석연찮은 검사를 통해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에드윈도 저자 앞에서 당당했다. “(아름다운 새가죽들을) 박물관의 컴컴한 상자 속에 넣어두기만 하는 건 유감이에요. 이미 표본에서 뽑아낼 수 있는 과학적인 데이터는 다 뽑아냈겠죠. 어차피 새들의 멸종을 막을 수는 없고 더 이상 그곳에서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박물관이 그 새들을 팔기만 했으면, 밀렵꾼으로부터 집까마귀 50마리의 목숨은 구할 수 있었을 거예요.” 표본들을 잘 보관했다가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하는 시대적 임무를 부여받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곤충과 햇빛, 독일군의 폭격, 화재와 도난으로부터 새가죽을 보호해왔던 큐레이터들의 노력을 오히려 비난한 에드윈의 주장은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합리화하려는 궤변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표본들과 멸종위기 동물 보호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면, 이 사건을 단순히 일부 ‘깃털 중독자’들의 일탈범죄로 치부해 버리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인류는 새들의 깃털에 ‘지식’이라는 빚을 지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150년 된 바닷새의 표본에서 뽑아낸 깃털 샘플을 사용해 바닷물의 수은량이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그것 때문에 다른 동물들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는 인간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깃털을 “바다의 기억”이라고 표현한다. 과학자들은 트링 박물관에 소장된 18세기 새의 표본에서 뽑은 깃털로 탄소와 질소의 동위원소를 분석해 그 새의 먹이를 파악해내는 데도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먹이사슬을 재구성해 결과적으로 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혹은 식량자원이 사라졌을 때 그 종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아직도 새의 표본들은 우리가 묻지 않은 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러나 아름다워지기 위해 오직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기 자신을 진화시킨 동물과 달리, 인간은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다른 존재의 아름다움을 약탈한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의 탐욕은 지금도 지구의 아름다운 기억을 하나씩 영구 삭제시키고 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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