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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돕는 정교한 도구, 감정의 힘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1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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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협상가를 위한 감정수업
ㆍ에얄 빈테르 지음·김진원 옮김
ㆍ세종서적 | 360쪽 | 1만7000



이 책의 부제는 ‘분노와 신뢰의 행동경제학’이다. 대부분의 행동경제학자들은 감정에 대해 비관적이다. 어떤 일에 관해 협상을 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뇌과학과 진화심리학까지 연구를 확장한 끝에 오히려 감정의 힘에 주목하게 됐다. 그는 감정과 이성을 명확하게 구분짓기란 불가능하다면서, 오히려 이 둘은 서로를 지탱하면서 함께 작동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그는 이를 ‘이성적 감정’이라 부른다.

자신을 납치한 은행강도에게 감정이입이 돼 같이 은행을 터는 ‘스톡홀름 신드롬’,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제안을 받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수락하는 ‘호구’.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의 비굴함은 인간 생존의 기술이다. 유대인임에도 나치 집회의 열기에 휩싸여 ‘히틀러 만세’를 외치는 군집현상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고 ‘다수가 정의’라는 가정을 유도해 현실의 불합리를 견뎌나갈 편리한 명분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이 선택한 메뉴를 별 고민 없이 따르는 식당 손님이나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보일 때 우르르 몰려가 주식을 몽땅 팔아치우는 경우도 그렇다. 이처럼 힘의 균형이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감정 기제는 인지 기제와 협력해 모욕이나 분노 감정을 조절한다. 물론 이러한 감정과 인지 기제의 상호작용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감정이 태고 원시시대부터 이어져온 진화과정에서 변변찮게 남은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보완해 균형을 잡도록 돕는 효과적이고 정교한 도구라고 주장한다. “결국 유리한 위치에 서는 사람은 생각에만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느끼는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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