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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좋은 이론적 틀 만들어 내야…‘한국적 사회학 틀’ 남길 것”

by 정소군 2022. 3. 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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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회학 이론 시리즈’ 20년 대장정 나선 김덕영 교수

‘사회학 이론 시리즈’를 시작한 김덕영 카셀대 교수가 지난달 29 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대학 시절부터 지갑 속에 넣어 다니던 막스 베버의 사진을 꺼내 보이고 있다. 13 명의 사회학 거장들을 다루는 이번 시리즈는 완성까지  20 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 @ kyunghyang.com


“개인과 사회의 문제 제대로 짚으려 에밀 뒤르켐으로 첫 시작

이론은 현실 보는 창…사회가 복잡할수록 더 많은 연구 필요

인문사회학, 논문만으론 안돼 아주 두꺼운 책으로 승부 봐야”


막스 베버, 오귀스트 콩트, 에밀 뒤르켐의 이름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학이 이런 거장들의 사상을 공부하는 학문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대학에서도 이론사회학을 가르치는 강좌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척박한 국내 이론사회학 연구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60)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리한’ 도전에 나선다. 앞선 3명의 사회학자를 포함해 니클라스 루만, 카를 마르크스, 게오르크 지멜, 허버트 스펜서, 피에르 부르디외 등 13명의 거장을 아우르는 ‘사회학 이론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다. 시리즈를 완성하기까지 장장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대장정이다.

<에밀 뒤르케임: 사회실재론>으로 시리즈의 첫 문을 연 김 교수를 지난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고된 작업을 시작하셨다”는 인사를 건네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게 제 직업인데요, 뭐. 지식인이라는 자아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년 평균 한 권의 저술서나 번역서는 생산하도록 노력해야죠.” 그는 매년 3개월 동안 카셀대에서 강의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국내에서 저술과 번역 활동에 몰두하면서 지난 30여년 동안 30권의 책을 냈다.

■ “큰 산맥의 조감도를 그리고 싶다”

- 학자로서 남은 인생 대부분을 온전히 이 시리즈에 쏟게 되는 셈이다. 한 명의 학자가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여러 사상가를 각각 700~1000쪽으로 깊게 다룬 저서를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데…. 원래 당신은 ‘치유할 수 없는 베버주의자’ 아닌가.

“저는 늘 베버 밖으로 나가 사회학의 계보도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물론 마르크스 전공자가 마르크스를 쓰고, 콩트 전공자가 콩트를 쓰면 더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이 전체를 보면 사회학이라는 큰 산맥의 조감도를 그릴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산맥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집단지성이 포괄성과 심층성을 기할 수 있다면, 개인지성은 전체성과 통일성을 기할 수 있다. 특히 제가 천착해 온 연구 주제가 ‘개인과 사회’ ‘행위와 구조’라는 두 개의 축인데, 이런 관점에서 각 거장들의 이론을 수렴해 보려 한다. 사실 저도 한국에서 사회이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면 굳이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제가 죽고 나면 더 이상 이런 작업을 할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웃음)”

김 교수는 독일에서 박사 학위만이 아니라 하빌리타치온(대학교수 자격)까지 취득한 드문 연구자다. 독일의 대학교수 자격 시험을 통과하려면 전공분야뿐 아니라 철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본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가 베버 전공자이면서도 다른 학자들을 깊이 다룰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오랫동안 축적된 내공 덕분이다.

- 그러나 이론은 종종 낡은 것으로 치부되거나 ‘탁상공론’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많이 일어나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럴수록 더욱 이론이 필요하다. 물론 이론이 문제 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이론은 현실을 보는 창문 혹은 안경이다. 나무를 베려면 도끼든, 톱이든 연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론이 있어야 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더 많은 이론을 만들고 연구해야 한다. 혹자는 서구 사회학자 이론 연구에 매진하는 저를 ‘매판 사회학자’ ‘사대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제가 베버나 뒤르켐을 연구하는 것은 그들이 독일인이거나 프랑스인이어서가 아니라 ‘세계인’이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사회학은 서구 근대의 산물이다. 한국적 사회학의 틀은 다산 정약용이나 퇴계 이황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사회학 이론 시리즈’의 포문을 뒤르켐으로 열었다. 뒤르켐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제가 늘 추구해 온 연구 주제인 ‘개인과 사회’ 문제가 뒤르켐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근대화의 가장 큰 성취로 인쇄술이나 자연과학을 꼽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개인의 발견’이다.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게 근대의 가장 큰 성과이다. 뒤르켐은 철학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개인의 존엄성을 사회학적인 사고로 파고든 학자이다. 그는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분업화가 진전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는) 개인의 고유성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로가 서로를 긴밀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기적 연대가 이뤄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회성’과 ‘개인성’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뒤르켐은 ‘개인숭배’라는 개념까지 사용하면서 모든 개인이 신성불가침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 그러나 사실 한국만큼 ‘개인’이 결여된 사회도 없다.

“한국에서 가장 무시되고, 차별받고, 배제되고, 억압받는 존재는 ‘개인들’이다. 노동자도, 청소년도, 여성도, 노인도 모두 사회가 외적으로 부여한 기능을 수행하는 객체적 자아, 즉 초개인적 사회집단의 구성요소로만 간주된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문제가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진 낙태 문제도 그동안 여성을 (‘엄마’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객체로 봤을 뿐) 주체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빨갱이와 친일파, 둘을 합친 거보다 더 나쁜 게 개인주의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등치시키는데 잘못된 것이다.”

- 개인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개인숭배’의 대제사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개인의 인격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는 가족, 교회, 지역사회 등 이차집단의 집합적 힘을 국가가 통제해야 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어떤 역사적 시기보다 적극적 정의를 추구하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원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하기 위해 각 개인이 연대해 집단을 형성해 왔던 것 아닌가.

“물론 국가주의, 전체주의로 가면 안된다. 특히 한국은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그러나 독일의 헌법 1조 1항이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않는다’인 것처럼, 원래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의무는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차집단은 외부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 개인을 자신의 배타적인 지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이차집단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역으로 이차집단은 국가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한다. 이차집단이 없으면 국가가 개인의 삶에 바로 개입하게 된다. 개인의 존재는 국가와 이차집단의 상호 견제 속에서만이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이 시민들과 직접 소통한다면서 이차집단을 건너뛴 채 개개인을 만나고 다니는 것 역시 의미가 없다고 본다.”

- 뒤르켐은 분업화가 진전될수록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이런 생존경쟁은 사회를 분열시키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분업 관계를 형성하면서 유기적 연대로 이행하도록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와 거리가 먼데….

“한국 사회는 뒤르켐이 말한 병리적 분업 중 하나인 강제적 분업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사회의 분업이 ‘신분’과 ‘계급’에 따른 것이었다면 근대사회의 분업은 ‘기능’에 따라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은 연고주의에 따른 전근대적 분업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학벌, 지연도 모자라 ‘모피아’ ‘해피아’ 같은 근무연까지 판을 친다. 이런 것들이 유기적 연대를 저해하고, 자기들끼리의 연대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 “한국 학계는 A4 10장짜리 논문공장”

- 주제를 좀 바꿔서 한국 학문의 위기에 대해 묻겠다. 논문은 많이 양산되는데, 한 주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서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 학자의 저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은 철저히 국가와 기업에 의해 관리되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연구가 정부의 3~5년짜리 프로젝트에 맞춰 짜인다. 대학이 교수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팀처럼 굴러간다. 제가 농담으로 한국은 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인문사회학은 논문만 가지고 안된다. 책으로, 그것도 아주 두꺼운 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대학의 사회학 교수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적 연구로 학위를 딴 분들이다. 그 수많은 외국 학위 소지자들 중 이론을 연구한 사람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대중과 소통한다는 명분으로 교양서만 쓰면서 ‘인문학적 글쓰기’로 포장을 한다. 그러나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교양 수준이 아닌 전문적인 지식생산을 뜻한다. 전근대사회에서는 그런 보편적인 교양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학자가 그 수준에 머물러선 안된다. 제가 보기엔 (한국 학계는) 근대적 분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최소 박사학위 소지자 이상은 1차적인 지식 생산을 맡아줘야 하는데 이들이 대중서 같은 2차 생산까지 하고, 현실참여를 하겠다면서 정치까지 뛰어든다. 그러면서 학계에 남아있는 사람을 ‘상아탑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어찌 보면 이는 유생이 공부를 한 후 과거를 봐서 국가관료가 되는 것이 최고 덕목이었던 유교 사회의 전통관념과도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식인의 가장 좋은 참여는 가장 좋은 이론적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은 분리되지 않는다.”

- 이론사회학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적 사회학의 틀’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다.

“다양한 사회 이론의 기본 틀을 한국 사회에 접목시켜 부딪쳐보는 과정에서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 그 과정을 조급해해서는 안된다. 한두 세대는 지나야 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하는 일은 기틀을 닦아놓는 것이다. 많은 이론 연구서와 번역서가 차곡차곡 쌓여가야 어느 순간 한국의 모차르트가 나온다. 바이올린 기본도 안된 상태에서 당장 모차르트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론서 번역조차 제대로 안돼 있다. <에밀 뒤르케임>을 쓰면서도 국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이 한 권도 없어서 작업이 더뎌졌다. 사실 제대로 된 번역서는 앞 세대가 해놓은 것을 기반으로 다음 세대에서 2차, 3차 개정까지 거쳐야 완성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원시자본조차 축적이 안돼 있는 상태다.”

그는 사회학 이론 시리즈의 다음 권을 내기 전 올 하반기에 ‘한국 자본주의 정신’을 해부하는 저서를 출간한 후 내년 초엔 베버 서거 100주년을 맞아 베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회과학방법론>의 번역서를 낼 예정이다.

“지금도 번역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오역이나 적절치 않은 단어가 들어간 저의 번역서가 향후 몇십년 동안 후대의 연구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까봐서요. 사실 저도 이론 연구가 재밌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어려워요. 그래도 지식인에게 책은 내가 쓰고, 네가 쓰고, 얘가 쓰는게 아닙니다. 책은 내가 쓰고, 내가 쓰고, 내가 쓰는 겁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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