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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율성’은 페미니스트가 만든 것이 아니다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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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름다움의 진화
ㆍ리처드 프럼 지음·양병찬 옮김
ㆍ동아시아 | 596쪽 | 2만5000


‘자연선택설’ 외 진화적 작용을 통찰했던 다윈의 ‘성선택설’ 바탕

조류학자 리처드 프럼은 사례 연구로 ‘암·수 공진화’ 가설 구축

비슷한 진화과정 거친 인간, 여전히 비대칭 사회구조에 머물러


찰스 다윈은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발표한 후 당대의 과학자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를 공격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다윈의 정통파 추종자들이었다. 다윈에게는 ‘진정한 다윈주의에 대한 반역자’라는 아이러니한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만 살아남아 후대까지 전해짐으로써 생물의 진화가 일어난다는 ‘자연선택설’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진화한 다른 형질들과 달리 생존가치 면에서 낭비 그 자체다. 이는 자연선택설과 완전히 배치된다.

다윈이 고심 끝에 새로 얻은 통찰은 “자연선택 외에 다른 진화적 힘이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암컷의 ‘성적 선호도’였다. 다윈은 암컷이 깃털·노래·과시행동에 대한 미적 선호도를 바탕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며, 수컷은 선택을 받기 위해 암컷의 선호도에 따라 자신의 장식물을 진화시켜왔다고 결론 내렸다.

자연선택설의 신봉자들은 다윈의 새로운 이론에 심기가 크게 불편해졌다. 암컷이 배우자 선택에서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출간되자마자 생물학자 조지 마이바트는 “동물은 감각능력과 인지능력이 부족해 성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암컷의 변덕은 포악(부도덕하거나 타락하거나 사악)하고 너무 불안정하므로, 그녀의 선택행위로 인해 수컷의 색조가 형성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윈을 ‘자신의 위대한 유산을 제 발로 걷어찬 자’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인 리처드 프럼은 이 책을 통해 ‘자연선택설’에 완패한 듯했던 다윈의 ‘성선택설’을 성공적으로 다시 부활시킨다. 그가 부활시킨 것은 단순히 주목받지 못했던 다윈의 이론만이 아니다. 저자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새들의 배우자 선택은 특히 암컷에게 있어서 선택의 자유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한 후 “이러한 진화 역학은 새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유효하며, 여성의 성적 자율성이 단지 (현대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이 고안해 낸)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님을 알게 한다”는 통찰을 이끌어낸다.

바우어새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만드는 구조물인 &lsquo;바우어&rsquo;는 암컷을 수컷의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사진 위). 수컷 청란은 화려하고 복잡한 패턴의 깃털을 활짝 펴서 구애 쇼를 펼친다. 동아시아 제공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오리이다. 오리종의 성비는 수컷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암컷이 선택할 신랑감이 넘쳐난다. 언뜻 생각하면 암컷이 복에 겨워할 것 같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수컷들이 ‘총각귀신’을 면하는 방법은 암컷의 선택을 받거나 아니면 내켜 하지 않는 암컷을 겁탈하는 것, 즉 ‘강제교미’이다.

‘강제교미’는 조류학자들이 ‘동물 간의 강간’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 진영으로부터 “인간의 강간은 매우 상징적·사회적 용어이므로 비인간 동물의 맥락에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비판에 따라 도입됐다. 저자는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강제교미 역시 암컷의 의사에 반하는 성폭력의 일종이란 사실이 모호해져, 진화에 있어서 성폭력의 역학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암컷 오리가 강제교미에 저항함으로써 치르는 비용은 막대하다. 종종 중한 상처를 입으며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암컷이 죽음을 무릅쓰고 강제교미에 저항하는 이유는 “성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보기에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낳을 간접적·유전적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관찰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바로 암·수 오리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군비경쟁’이다. 오리는 다른 조류의 97%와 달리 아직도 페니스를 갖고 있는데, 일부일처제를 택한 오리종은 수컷의 페니스가 작고 암컷 역시 단순한 질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면 강제교미를 일삼는 오리종의 경우 수컷이 길고 큰 페니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암컷은 매우 복잡한 구조의 질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 두가지 특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진화”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분석한다.

즉, 수컷 오리는 내켜 하지 않는 암컷의 질에 강제로 삽입할 수 있는 모양의 페니스를 진화시켰고 암컷은 이에 맞서 강압적 수정을 저지할 수 있는 해부학적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암컷 오리의 질 구조를 관찰한 결과, 생식관에 일련의 구불구불한 통로들이 발견됐는데 이 통로들은 시계방향으로 꼬여 있다. 이는 반시계방향으로 꼬인 수컷 오리의 페니스가 강제로 진입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저자는 “암컷 오리가 성폭력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지렛대를 통해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보호하려 애써왔단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리 외의 대부분 조류는 왜 페니스가 아예 없을까. 저자는 “암컷들이 페니스 없는 수컷을 명백히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페니스의 주요 기능이 오리처럼 강제교미를 통해 암컷의 배우자 선택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암컷들이 성적 자율성에 대한 위협을 감소하기 위해 ‘삽입을 거부하는 짝짓기 선호’를 진화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 자율성을 둘러싼 암·수 간의 성 갈등은 오리의 경우 적대적 군비경쟁을 초래했지만, 모든 새들이 이렇게 “격렬하고 자기파괴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은 아니다. 바우어새는 오리와 달랐다. 수컷의 성적 과시행동과 암컷의 미적 선호도가 공진화하면서 ‘미적 리모델링’이라는 독특한 진화적 반응을 보였다. 그 결과 “수컷은 암컷을 좀 더 즐겁게 해주고 암컷의 선택에 좀 더 수용적인(자신과의 짝짓기를 선호하지 않더라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매력적인 성적 파트너로 거듭났다.”

바우어새 수컷은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나무막대기와 돌멩이 등을 주워와 ‘바우어’라는 구조물을 만든다. 이는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장식한 일종의 ‘공연장’이다. 수컷의 바우어에 도착한 암컷은 수컷의 용모와 수집품들을 둘러본다. 만약 수컷이 마음에 든다면 암컷은 교미 자세를 취함으로써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수컷은 암컷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등에 올라탄다. 이때 주목할 것은, 암컷이 바우어를 통과하지 않고 앞마당과 뒷마당에 몸을 반씩 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암컷이 자세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컷이 접근하면 암컷은 재빨리 뒷마당으로 나와 멀리 날아가버리면 그만이다. 수컷은 바우어의 벽에 가로막혀 암컷을 곧바로 추격할 수 없다. 바우어의 구조는 암컷을 수컷의 우격다짐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저자는 “아마 처음에는 잎사귀 같은 단순한 구조물로 우연히 시작됐겠지만, 막대기 몇개를 물어다 얹은 바우어가 ‘성적 학대의 피난처’ 역할을 수행하자 막대기를 모으는 수컷이 암컷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됐을 것”이라며 “암컷의 성적 자율성과 바우어 건축물이 지속적으로 공진화하면서 훨씬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미적 구조와 공연을 가능케 했다”는 가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일단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확보되면, 더 이상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수컷들은 순수히 ‘아름다움’만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진화생물학자 존 엔들러의 연구에 따르면, 큰바우어새의 일부 개체군이 만드는 바우어 장식에서는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더 큰 장식물을 배치하는 ‘원근법’까지 구사된 흔적이 발견된다. “서양의 미술가들이 15세기 이전까지 구사하지 못했던 원근법이 인간보다 바우어새에게서 먼저 진화했다”는 것이다.

수컷 로랜드고릴라(왼쪽)의 송곳니는 암컷에 비해 매우 크고 뾰족하다. 반면 인류는 남녀의 송곳니 차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동아시아 제공



인간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침팬지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후 몸집이 크게 진화해왔지만, 남녀 간 체격 차이는 엄청나게 감소해왔다. 오랑우탄 수컷이 암컷보다 평균 두배 이상 우람하고 침팬지도 수컷이 암컷보다 25~35% 크지만, 인간의 경우 남성은 여성보다 평균 16% 클 뿐이다. 성별 간 체격 차이는 몸집이 커질수록 더욱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인간은 거꾸로 진화해 온 것이다. 송곳니 역시 마찬가지다. 오랑우탄과 고릴라의 암·수 간 송곳니 차이는 매우 극단적인데, 인류는 남녀의 송곳니 차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성적 폭력을 회피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성적 자율성 확대를 위해 ‘자신과 비슷한 몸집’과 ‘무뎌진 송곳니’를 가진 남성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이러한 ‘미적 무장해제’가 비리비리하고 나약한 남성의 탄생으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남성형질(이상적인 신체비율, 넘치는 성적매력)을 지속적으로 진화시켰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는 오히려 “인류의 생존에도 도움이 됐다”. ‘강제교미’에 저항하다 희생되는 어린 암컷 오리와 달리 여성의 성적 자율성 향상은 ‘남성의 성적 강제’로 인한 피해를 감소시키고, 수컷끼리의 권력다툼 때문에 영아살해율이 높은 오랑우탄과 달리 인류 개체군의 성장률을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이 책에서 생존과 번식의 효용성만 따지는 기존의 자연선택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여성의 오르가슴, 동성애, 남성의 페니스 크기와 형태 등에 대해서도 성적 자율성과 성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가설을 펼친다.

하지만 ‘성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여성의 진화적 몸부림이 인간의 진화에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왜 아직도 전 세계의 여성들은 진화과정의 결실이어야 할 성적·사회적 자율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 이에 대해서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오리의 성생활에서처럼 양성 간의 전쟁은 매우 비대칭적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면서 “남성은 무기와 통제수단을 진화시키는 반면, 여성들은 단지 자유로운 선택의 방어수단을 공진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이것은 공정한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이 성적 자율성을 크게 발달시킨 것은 맞지만, 뒤이어 진화한 인간의 문화가 성갈등의 새로운 문화적 메커니즘을 등장시켰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물질 자원의 통제권을 장악한 남성이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남성의 사회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새로 창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 여성들이 과거의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주범은 가부장제라는 문화의 진화였다”고 말한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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