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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먼 학생인권](上) 변하지 않는 학교

인권

by 정소군 2011. 3. 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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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 그리고 또 공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건 공부뿐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나도 겪어봤다”고. 과연 그런가. 행복은 성적 순일까. 머리가 길면 공부를 못할까. 공부 못하는 학생은 차별을 받아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ㆍ두발·복장·소지품 검사 ‘일상’… 벌점 쌓이면 퇴학



학생은 1분, 1초도 방심할 수 없다. 학교 측의 배려는 인색하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권리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드러내야 한다. 교복 상의 가슴 부분에 박음질한 이름표 때문이다. 서울 ㅁ중학교 김모군(14)은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에게나 내 이름을 알도록 하는 게 조금 무섭다”고 했다. 명찰 박음질은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생활의 자유 제한과 범죄 노출 우려’를 이유로 시정을 권고한 사항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학교가 “탈·부착식 명찰은 쉽게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며 학칙으로 박음질을 규정하고 있다.

 


교문 앞에 도착하면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해야 한다. 교문 양옆으로 늘어선 선도부는 머리 길이, 치마 길이를 ㎝, ㎜ 단위까지 잰다. 경기 안양 ㅍ고 김모양(17)은 자로 잰 결과 치마가 규정보다 1㎝ 짧아 교사에게 적발됐다. 규정에 맞추려 밑단을 수선해 늘려놓기까지 했는데, 또 벌점이다. 교사는 “걸리기 싫으면 허리 치수 하나 더 큰 거 사든가”라고 말했다.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날을 잡아 검사하는 날이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인천 ㅅ고는 개학하자마자 실시한 복장검사에서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학생 150여명을 쫓아냈다. 쫓겨난 학생들은 4교시까지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머리를 깎아도 ‘바리깡’을 댄 흔적이 없으면 다시 깎게 하고, 심지어 자퇴까지 권유했다”고 말했다.

선도부와 전쟁을 치르고 겨우 도착한 교실. 난방을 하지 않아 너무 춥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교복 재킷 위에 코트나 점퍼를 입을 수 없다. 학칙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무릎담요를 두른다. 이것도 걸리면 압수다. 서울 ㄷ여고 이모양(18)은 “추워서 못살겠다고 항의했더니, 학교에서 5만원씩 걷어 ‘학교 패딩’을 사자고 제안했다. 집에서 가져온 패딩 점퍼는 몽땅 압수해가면서 왜 돈 내고 새걸 사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 ㅎ여고 ㅇ교사는 “수업시간에 담요나 점퍼를 뒤집어쓰고 자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며 “또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시선이 분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논리라면 대학생들도 교수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벌점으로 수치화된다. 학생증을 안 가져와도 벌점, 학생용 화장실이 붐벼 교사용 화장실에 들어가도 벌점, 졸다가 걸려도 벌점이다. 벌점이 쌓이면 강제전학이나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다. 상(賞)점도 있긴 하다. 담배 피우는 친구를 금연의 길로 이끌면 상점 1을 받아 벌점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친구가 담배 피웠다는 사실을 고자질하는 셈이 된다.

수업 중간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생활지도 교사와 선도부 4~5명이 들이닥치면 소지품 검사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인천 ㅈ중을 졸업한 이모양(16)은 “선도부가 책상 속, 사물함, 교복 주머니까지 탈탈 뒤지는 동안 우리는 범죄 용의자들처럼 ‘머리에 손을 얹고’ 대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모든 규제를 없애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해 안되는 규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머리가 규정보다 1~2㎝ 길다고, 치마 길이가 1㎝ 짧다고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어른들은 학창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렇게 살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거면서 왜 우리에게는 똑같은 걸 강요하나요? 시대가 바뀌었는데, 학교만 그대로예요.” 인천 ㄱ중을 졸업한 김모군(17)이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한 이유다. 중학교 3년도 겨우 버텼는데, 고교 예비소집일날 학교에 가니 신입생 모두에게 “학칙을 어길 경우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그 길로 미련없이 학교를 떠났다. “용기가 없어서 문제 제기는 못하겠고, 그냥… 도망친 거죠.”

그러나 김군 같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든 말든 오늘도 학교는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굴러간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학교 측이나 교사들은 “별일 없이 산다”.

 

정유진·박준철·박효재 기자 sogun77@kyunghyang.com

 

 

"우리는 공부기계...아플 수도 없어요"

 

 

 

ㆍ요통·소화불량·두통 시달려… “분위기 깬다” 보건실도 막아

올해 인천 ㄷ고교에 진학한 이모양(16)은 지난해 중학교에 다닐 때 소화불량이 생겨 계속 고생하고 있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등을 앞두고 점심시간에도 자율학습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양은 식사를 대충 하고 교실로 돌아와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이양은 “점심시간만이라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선 허락하지 않았다”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해서 그런지, 밥을 먹으면 소화도 안되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 ㄷ고 2학년 유모군(17)은 지난해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에 나가야 했다. 방학에는 오전 6시까지 나와 교과 진도를 나가고 토·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자율학습을 했다. 몸이 약한 유군은 주말에는 집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학교 측은 “동의서를 냈기 때문에 학교에 나와야 한다”며 막무가내였다. 수업에 빠질 경우 벌금까지 내야 했다.

학생들에게 예외 없이 강요되는 입시몰입 교육으로 청소년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학생들은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허리통증이나 소화불량, 만성피로나 두통 등을 호소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파도 아픈 티를 낼 수 없다. 서울 ㅇ고 김모양(17)은 “보건실에 가겠다고 하면, 선생님이 ‘학습 분위기를 해친다’며 허락을 안 해준다. 아파도 참으면서 교실 책상에 앉아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ㅅ고 1학년 박모양(16)은 “지난해 스트레스 때문인지 생리통이 너무 심해져 엄마와 한의원에 가기로 했는데 학교에서 조퇴를 시켜주지 않았다”며 “심지어 선생님은 ‘다른 여학생들도 생리를 하지만 (너처럼) 유난 떨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서울 ㅇ고 2학년 김모양(17)은 “머리가 너무 아파 조퇴하거나 보건실에 가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꾀병 아니냐’고 말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늘 잠이 부족하다. 서울 ㅎ여고 2학년 서모양(17)은 지난해 학교에서 상위권 학생들을 모아놓은 ‘특별반’에 들어 밤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서양은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2시까지 자율학습한 뒤 집에 가서 과외받는 친구도 있다’며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한·미·중·일 4개국 청소년 건강실태 국제비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7시간 이상 잔다’는 한국 고교생은 16.1%에 그쳤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46.7%, 중국은 32.8%였다.

방승호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생활지도장학관은 “청소년기에 발생한 육체적, 정신적 질병은 만성적 질병으로 굳어지기 쉽다”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운동량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혜리·이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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