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인정한 고등법원의 판결은 외국(서구) 시각에 의존한 것이다.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한 인도의 형법 조항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도 대법관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기대에 찬 미소는 순식간에 절규로 바뀌었다. 법정을 가득 메운 동성애자들은 흐느끼며 서로를 얼싸안고 위로했다. 대법원이 고법의 동성애 합법화 판결에 쐐기를 박아줄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풍선까지 준비해둔 상태였다.
India's Supreme Court on Wednesday upheld a colonial-era law criminalising homosexuality in a landmark judgment that crushes activists' hopes for guarantees on sexual freedom in the world's biggest democracy. Photo: AFP
타임스오브인디아는 대법원이 한 동성애 옹호론자가 제기한 동성애 합법 탄원에 대해 전날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12일 보도했다. 인도 형법 377조는 “자연의 질서를 거슬러 동성, 동물과 성관계를 맺는 자는 최장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결정은 뉴델리 고법이 2009년 내린 동성애 합법화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고법은 1860년 영국 식민지배 시절 제정된 이 조항이 현재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헌법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에도 어긋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법의 판결은 서구의 사례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라며 “이 조항은 인도의 현행 헌법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다만 “법 수정권한을 가진 의회가 동성애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방법은 언제든지 가능하다”며 의회에 공을 넘겼다.
인도 사회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 후 뉴델리와 뭄바이, 캘커타 등 인도 곳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동성애자들이 ‘우리의 사랑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규탄 집회를 열었다. 한 레즈비언 여성은 “예전에도 여성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동성애 인권단체들은 이번 판결로 동성애자들이 주변의 공격과 약탈에 노출되고, 에이즈에 걸리더라도 체포의 위험 때문에 공공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을 옹호한 바한바티 변호사는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를 인지하고 이를 수용해야 할 법원이 18세기 영국의 통념에 갇혀 윤리적인 책임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판결을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인도 정부는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카필 사빌 법무부 장관은 “시대착오적인 법을 개정하기 위해 매우 단호하고 빠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슬람·기독교·힌두교 등 종교 지도자들은 자연 질서를 거스르는 동성애는 금지돼야 한다며 모처럼 한목소리로 대법원 판결을 지지했다.
아동복지단체를 이끄는 아모드 칸트도 아동의 정상적인 성장을 보장하려면 동성애 금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 70여개국이 동성애 행위를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동성애 합법화 움직임이 잇따라 후퇴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이 지방의회를 통과한지 두 달도 안돼 위헌판결을 받았다. 호주 국영 ABC방송은 동성결혼의 효력을 인정하는 호주 수도 특별구(ACT)의 ‘결혼평등법’이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고 12일 보도했다.
호주에서는 그동안 동성 결혼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지난 10월 수도특별구 의회가 자체적으로 결혼평등법을 통과시키면서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7일에는 캔버라에서 46쌍의 동성 커플이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주일도 안돼 부부관계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호주 헌법 체계에서 결혼과 관련한 법률의 제정과 개정 권한은 연방 의회에 있다”면서 “연방 결혼법은 동성간 결혼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수도특별구 의회의 결혼평등법은 무효”라고 밝혔다. 동성결혼 옹호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로드니 크룸은 “이번 판결은 새로 탄생한 동성 부부의 그들의 가족 모두에게 재앙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