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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서벵골의 '큰언니', 모디 총리의 독주를 가로막다 (2021.5.3)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22. 4. 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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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유일한 여성 주총리인 서벵골의 ‘큰언니’가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독주를 가로막았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들은 지난 2일 4개주와 1개 연방직할지에서 치러진 지방선거 투표 집계 결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인민당(BJP) 연합이 5곳 중 3곳에서 참패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3일 보도했다. 특히 최고 격전지였던 서벵골주에서는 ‘반모디’ 세력의 기수인 마마타 바네르지 주총리가 이끄는 트리나물회의(TMC)가 전체 294석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213석을 휩쓸며 모디 총리에게 압승을 거뒀다.


서벵골주는 모디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곳이었다. 힌두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해 온 그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 무슬림인 서벵골주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열릴 총선을 앞두고 ‘반모디’ 정서가 강한 이 지역의 싹을 잘라버리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모디 총리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벵골을 직접 방문해 수십여 차례에 걸쳐 대규모 유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는 결국 방역 실패 책임에 대한 민심의 분노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모디 총리를 꺾고 3연임에 성공한 바네르지 서벵골 주총리는 ‘디디’(큰언니)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유일한 여성 주총리이자, 첫 여성 철도부 장관과 석탄부 장관을 역임한 인도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 중 한명이다.

마마타 바네르지 인도 서벵골 주총리가   2004 년 인도의 첫 여성 석탄부 장관으로 임명돼 뉴델리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


그가 인도 정치에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벵골주는 네루·간디 가문이 이끄는 인도식 사회주의 노선 하에서 무려 30년 넘게 벵골공산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낙후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뒤늦게 적극적으로 기업 투자 유치에 나선 벵골공산당은 인도의 국민차 ‘타타자동차’에 콜카타 외곽의 농지를 공장 부지로 제공키로 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농업 이외의 다른 생계 수단을 생각하기 어려운 농민들은 땅을 팔 수 없다고 버텼다.

이때 시위대를 이끈 인물이 당시 야당이던 바네르지 트리나물회의 대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네르지는 2011년 열린 지방선거에서 34년 동안 집권해 온 벵골공산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때 서벵골에 공장을 설립하는데 실패한 타타자동차를 재빨리 자기 지역구로 유치한 인물이 당시 구자라트 주총리였던 모디 총리라는 점이다. 그는 이를 통해 친기업 이미지를 공고화한 덕분에 2014년 총선에서 인도인민당을 승리로 이끌며 총리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모디 총리는 이번 선거 내내 바네르지 주총리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유세연설을 할 때마다 여성을 희롱하는 말투로 “디디 오 디디”라고 반복해서 바네르지 주총리를 불러 여성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바네르지 주총리는 여성들에게 큰 지지를 얻고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트리나물회의 후보의 17%를 여성으로 공천하기도 했다.

바네르지 주총리는 힌두교도이지만 이슬람 역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던 만큼 무슬림에게 유화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빈곤층을 위한 각종 복지정책을 크게 확대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까지 약 300만명 이상의 서벵골 주민이 ‘문앞까지 찾아가는 정부’라는 복지 서비스의 혜택을 누렸다. 여학생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모디 총리와 정면 승부를 벌여 이처럼 압승을 거둔 정치인이 없었던 만큼 바네르지 주총리의 위상은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네루·간디 가문이 세운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네르지 주총리는 현재 모디 총리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바네르지 주총리는 “서벵골이 인도를 구했다”라고 승리 소감을 밝히면서, 코로나19 대응이 자신의 최우선 정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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