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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총선 D-4]여당 실책 반사이익, 힌두극우 인도국민당 ‘선두’… 10년 만에 정권 탈환할 듯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14. 4. 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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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8억 유권자, 한 달 동안 ‘지구촌 최대 민주주의 축제’
ㆍ높은 실업률에 청년층 지지 몰리고 여당 부패 스캔들 겹쳐
ㆍ총리 후보 모디의 성장사·카리스마도 선거정국 주도 비결


인도 빈농의 아들 아닐 쿰마(25)는 7일 총선에서 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할 예정이다. 그의 아버지는 선거 때마다 농민 지원책을 내놨던 국민의회(INC)를 찍어왔다. 하지만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쿰마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우리에겐 일자리가 필요하다. 일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인도국민당을 찍을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오는 7일부터 지구상 최대의 선거가 시작된다. 유권자만 8억명이 넘는 인도 총선이 앞으로 한 달 동안 실시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운명을 가를 키워드는 ‘일자리’와 ‘부패척결’이다.

“바꿔보자” 인도의 야당인 인도국민당 지지자들이 지난달 26일 북부 도시 자무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 후보의 선거유세를 들으며 함성을 외치고 있다. 자무 | AP연합뉴스


■ 차(茶) 팔던 모디, 선거 쥐락펴락

선두를 달리는 것은 인도국민당(바라티야 자나타·BJP)이다. 이번 선거는 국민당이 내세운 차기 총리 후보인 나렌드라 모디의 선거다. 집권당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딱히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디가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를 무기로 선거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NDTV 등의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당이 주도하는 야당연합세력이 록사바(하원) 543의석 중 230~280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며, 국민의회 중심의 여당연합은 80~120석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당이 승리하면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힌두 극우세력이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은 16~19세기 인도를 통치한 이슬람 무굴제국 이전 옛 힌두 왕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며 1980년 창당됐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집권했으나 오랜 전통의 국민의회에 다시 정권을 빼앗겼고, 이후 10년간 만모한 싱이 이끄는 국민의회 정권이 이어져왔다.

이번 선거에서 선풍을 일으킨 모디는 인기 못잖게 숱한 논란을 부르는 인물이다. 힌두 극우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 2001년부터 서부 구자라트 주총리를 맡고 있다. 2002년 구자라트에서 힌두 극우파가 무슬림 2000여명을 살해한 ‘고드라 사건’ 때 사실상 학살을 방조했다. 지난해 그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자 비하르 주 등의 야당이 반발하며 야권연합에서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김찬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인도학) 교수는 “이처럼 극우 이미지가 강한 정당이 강력한 집권 후보로 떠오른 것은 이들 스스로의 힘이라기보다는 최근 둔화된 경제성장률과 여당의 실책으로 인한 반사이익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무슬림 등 소수파는 모디가 총리가 되면 힌두 극우주의가 다시 강해질까 두려워한다”면서 “국민당도 이를 알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후에는 당분간 유화정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 일자리 이슈가 승패 가를 듯 

이런 우려 속에서도 국민당이 득세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경제다. 노동시장에 대규모로 진입하고 있는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면 연간 8%대로 경제가 성장해야 하지만 2012년 이후 인도의 성장률은 5%대에 머물고 있다. 대졸 실업률은 10%에 육박한다. 20년 후 노동시장에 진입할 인구가 2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돼, 일자리 문제는 당분간 인도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억5000만 일자리 창조’를 공약으로 내건 국민당이 전체 유권자의 8%에 달하는 18~23세 청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모디는 구자라트 주총리를 세 번 연임하면서 주의 경제성장률과 소득을 인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외국투자를 적극 유치했으며 기간시설 투자로 경기를 부양해 ‘모디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카스트 하위 계급인 ‘간치(Ghanchi)’ 출신에, 어린 시절 가난으로 기차역에서 차를 파는 행상을 했다. 이런 개인사가 합쳐져 인간승리의 표상이 된 것도 모디 열풍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국민의회 정책에는 두드러진 게 없다. 국민의회는 전통적으로 고속성장보다 ‘포용성장’에 초점을 둬왔다. 정부는 빈농들에게 보조금과 푸드 스탬프를 주면서 중산층과 대기업보다는 서민과 중소기업 보호에 역점을 쏟았다. 통계상 인도의 빈곤율은 지난 10년간 37%에서 22%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성장이 둔화되고, 고질적인 부패로 보조금이 중간에서 사라지는 사례가 만연했다. 국민의회는 결국 중산층과 서민층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해 궁지에 몰리게 됐다.

■ ‘후광’ 잃은 국민의회, 스캔들 악재

국민의회에는 모디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도 없다. 어머니인 소냐 간디의 후광에 힘입어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라훌 간디가 한때 관심을 모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리더십을 보여준 적이 없다. 네루-간디 가문의 후광은 시대가 바뀌며 점점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

최근 잇달아 터진 부패 스캔들도 전통적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부패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지난해부터 다크호스로 떠오른 아마드미(보통사람)당의 약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오랫동안 반부패 시민활동가로 일해온 아르빈드 케지리왈은 지난해 아마드미당을 창당하자마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델리 주총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아직 정치경험이 짧고 행정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김찬완 교수는 “국민의회당과 아마드미당도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변화를 바라는 인도 국민들의 민심이 다시 국민당에 쏠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권자 문맹률 고려해 투표용지에 정당 그림

ㆍ투표함 낙타로 옮기고 밀림선 코끼리 방해도


인도의 선거는 ‘지상 최대의 민주주의 축제’라고 불린다. 자유·보통선거를 실시하는 나라 중 유권자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 치러지는 총선의 유권자 수는 2009년 총선 때보다 1억명 가까이 늘어난 8억1450만명으로 역대 최대다.

543개의 하원 의석을 놓고 싸우는 선거는 오는 7일부터 5월12일까지 36일간 이어진다. 투표소도 93만곳에 달한다. 영국 가디언은 “인도 사막 지역에서는 낙타에 투표장비를 싣고 옮긴다”며 “밀림에선 야생 코끼리가 길을 막아 장비를 옮기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일간지 더뉴스는 “인도 정당들이 이번 선거에 쓴 돈은 50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한다”면서 “70억달러를 쓴 2012년 미국 대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분석했다.

한 달 이상 치러지는 선거 기간 때문에 유권자들이 지역을 옮겨다니며 ‘이중 투표’를 하는 등 부정이 개입될 우려도 크다. 주마다 투표일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사라드 파와르 민족주의회의당(NCP) 총재가 선거 유세에서 “사트라(17일)에서 투표한 후 손에 묻은 잉크를 지우고 다시 뭄바이(24일)에서 우리를 찍어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중 투표를 막기 위해 투표를 마친 유권자의 왼손 검지 손톱에 특수 잉크를 발라 표시한다. 파와르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선관위는 “특수 잉크는 화학약품으로도 지워지지 않으며 몇 달 동안 자국이 남기 때문에 이중 투표 가능성은 없다”고 즉시 진화에 나섰다. 투표용지에는 국민의 30%가 넘는 문맹자를 고려해 각 정당을 상징하는 연꽃, 시계 등이 그림으로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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