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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필리핀 … “시신 5구 중 2구는 어린이”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13. 11. 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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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빠지자 나무에 걸린 주검들… “시신 5구 중 2구는 어린이”

ㆍ‘슈퍼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현장
ㆍ약탈 늘어나 ‘무정부 상태’로 구호 작업도 어려워

‘슈퍼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 레이테섬의 타클로반은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는 참혹한 풍경이다. 시신들은 물이 빠져나갈 때 미처 땅으로 내려오지 못한 채 그대로 나무에 걸려 있다.

나머지 시신들도 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나 건물 밑에 깔린 채 일부분만 삐져나왔다. 그 주위에는 목적지 없이 ‘좀비’처럼 헤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거나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들로 추정됐다. 현지 언론들이 전하는 타클로반의 모습이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큰 희생자는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어린이들이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아시아 공보담당관인 리네트 림은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직후,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거리에는 물이 무릎 높이로 차 있었고, 그 위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신의 절반가량은 어린이였다.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 중부 레이테섬의 타클로반 공항 임시의료소에서 11일 태어난 아기가 이재민 품에 안겨 있다. 21살의 에밀리 오르테가(왼쪽)는 대피소에서 공항까지 헤엄을 치고 푯말을 붙잡으며 이동해 이날 임시의료소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재난 속에서 태어난 아기 이름은 ‘비 조이’라 지어졌으며, 현지 언론들은 ‘기적의 아기’라 부르고 있다. AP


리네트 림은 11일 영국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타클로반시의 남쪽 지역을 전부 돌아봤기 때문에 하이옌 피해 상황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면서 “거리에서 숨진 어린이들을 목격했다. 내가 본 시신들 가운데 5구 중 2구는 어린이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모두에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특히 어린이들이 가장 염려스럽다”며 “어린이들은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처지에 놓여 영문도 모른 채 겁에 질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방문한 마을마다 주민들은 자기 마을에서 10~50명이 숨졌다고 말했다”면서 “태풍이 오기 전 대피한 가정들도 가족 1명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집에 남겨뒀고, 집에 남은 사람 대부분이 숨졌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는 태풍 영향권 안에 든 968만명 중 절반에 가까운 400만명이 어린이인 것으로 추정했다. 전날만 해도 전체 태풍 피해자가 400만명이고 이 중 어린이가 170만명으로 예상됐지만, 피해 통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고 있다. 유니세프 아·태지역 공보담당관 크리스 보노는 “전체 사망자와 피해자 수는 아직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피해 지역에 1만5000명의 군 병력을 투입했지만, 아직 거리에 쌓인 시신 수습에도 애를 먹고 있다. 시신 수습 차량을 운전하는 한 현지인은 “트럭 6대가 수시로 타클로반 거리를 돌며 시신들을 주워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어디에나 주검이 널려 있어, 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 라플러에 말했다.


복구작업이 늦어지면서 피해 지역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물과 음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약탈을 벌이면서 타클로반에는 또 다른 공포가 찾아왔다. 생존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망치로 유리창을 깨거나 철문을 부수고 식료품점에 침입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구호차량도 약탈 대상이 됐다. 필리핀 적십자위원회 리처드 고든 대표는 “약탈자들 때문에 구호가 더뎌지고 있다”고 말했다. 

빵집 주인인 엠마 베르메조는 “치안은 마비됐고 구호는 너무 더디다”며 “이런 상태가 며칠 더 지속되면 서로를 죽이기 시작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의 시신을 뒤져 훔칠 것을 찾던 에드워드 구알베르토는 AFP통신에 “사흘을 굶고 나니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며 “태풍은 우리의 존엄성까지 앗아갔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타클로반의 약탈행위가 위험수위라는 판단에 따라 11일 이 일대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밤 시간 통행을 금지했다.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까지 고려 중이다.

<세부 | 김보미·정유진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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