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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태풍 ‘하이옌’이 가른 삶과 죽음의 경계선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13. 11. 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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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엄마라도 살아야 해” 마지막 말… “저기 해안이 보인다” 기적의 말


슈퍼태풍 하이옌은 간발의 차이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거친 파도 속에서 가족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기적적인 사연들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시신과 동물 사체 등이 썩는 냄새에 코를 막고 가는 타클로반 주민들. /AP


■ 죽음: 딸의 마지막 말 귀에 쟁쟁

필리핀 중부 레이테섬 타클로반에 사는 고등학교 교사 베르나데트 테네그라 가족은 태풍이 몰아치던 지난 8일, 집에 있었다. 이전에 겪은 수많은 태풍처럼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물이 무섭게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집이 무너졌다. 테네그라와 그의 남편, 딸들은 물론 같은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파도에 쓸려 건물 밖으로 튕겨졌다. 급류를 피하기 위해 헤엄쳐 나가려는 순간, 막내딸이 부서진 건물 잔해의 뾰족한 끝에 단단히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만 참아라. 곧 빼내줄게.” 테네그라는 딸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물살 때문에 쉽지 않았다. 딸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냥 먼저 가. 엄마라도 살아야 해!” 

테네그라는 결국 딸을 포기한 채 돌아섰다. 태풍이 멈춘 후 다시 찾은 집은 강의 제방 위까지 떠내려간 상태였다. 테네그라는 현지 언론 인콰이어러에 “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팔로 지역에 사는 빌프리드 밀리탄테는 12살 난 꼬마였다. 태풍이 불던 날, 밀리탄테의 엄마는 대피소로 가면서 아들을 데려가려 했지만,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아 가축들을 지키려 했다. “엄마, 저도 이제 충분히 컸어요. 나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소년은 마을 사람 20명의 시신 더미 속에서 발견됐다. 

■ 삶: 혼자라면 포기했을 것 

현지 언론 마닐라불레틴은 7살 소년과 함께 6시간 동안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 필리핀 공군 지역 사령관 페르민 카라안의 기적적인 사연을 소개했다. 카라안은 태풍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구조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사마르섬 해안에 있는 기지에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하이옌은 그의 기지 건물마저 무너뜨렸다. 바다로 쓸려나간 그는 파도가 부하 직원 두 명을 삼키는 모습을 목격했다. 죽음의 기로에서 위태롭게 파도 위를 떠다니던 그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순간, 그의 시야에 코코넛 나무 잔해를 붙든 채 바다 아래로 막 가라앉으려 하는 7살짜리 꼬마가 들어왔다. 카라안은 소년을 안고 6시간 동안 바다 위를 부유했다.

하지만 소년은 6시간 동안의 사투를 버티기에 체력이 약했다. “너무 추워요. 전 이제 잘래요.” 소년이 생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카라안은 “조금만 버텨. 저기 해안이 보인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해안이 나타났다. 파도가 그들을 해안으로 밀어준 것이었다. 그는 “혼자였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클로반의 생존자들은 실종된 가족들이 카라안처럼 기적적으로 생환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전기와 통신 시설이 모두 끊겨 가족과 연락을 취할 수 없는 그들은 외신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한 외신기자는 아들을 찾고 있는 여성의 부탁으로 잃어버린 두 자녀의 장난감을 들고 있는 그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현지 언론 GMA뉴스네트워크도 “살아 있어요” “우린 괜찮지만 집은 무너졌어요” 등 생존자들의 메시지를 담은 종이 쪽지 사진을 트위터에 대신 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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