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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자기평가 후 선택적 변화’…국가의 위기 극복법도 개인과 다르지 않다 [화제의 책]

by 정소군 2022. 3. 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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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변동
ㆍ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강주헌 옮김
ㆍ김영사 | 600쪽 | 2만4800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라는 저자의 이름이다. 생리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문화인류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등 ‘문명’ 3부작을 써낸 그는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세계 석학 중 한 명이다. 다이아몬드는 이번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미국과 터키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내 책의 판매량이 가장 많다”며 특별히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가 <어제까지의 세계> 이후 6년 만에 낸 이 책은 인류문명사적으로 거대 담론을 논했던 전작들과 달리 보다 구체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세계에 집중한다. 이 책의 원제에 달린 부제는 ‘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터닝포인트’이다. 그는 국가가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개인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국가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혼, 실직,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다양한 위기에 부딪힌다. 개인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과 유사한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국가 역시 위기에 처하면 동맹국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국가들이 이미 고안해낸 해결책을 차용한다. 그는 개인이든 국가든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변화(selective change)’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 앞에서 ‘정직하게 자기평가’를 한 뒤 자신의 쓸모있는 부분과 쓸모없는 부분을 가려내고, 쓸모없는 부분은 새로운 환경에 따라 ‘선택적’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다이아몬드는 개인의 위기 극복에 영향을 주는 12가지 요인을 조금 변형시켜 국가적 위기 해결을 위한 12가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에 대한 국민적 합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과 필요없는 부분을 규정하기 위한 울타리 세우기 △국가 정체성 확립 △정직한 자기평가 △유연한 대응능력 등이다. 그리고 이 12가지 요인의 프레임을 적용해 각 국가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했는지 살펴본다. 분석 대상은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호주, 미국 등 7개 국가다.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직접 살아봤거나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 자신에게 친숙한 나라를 기준으로 선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핀란드는 ‘정직한 자기평가’를 통해 생존을 위해서라면 소련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유연한 대응능력’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소련과 실용적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호주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다민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지만, ‘울타리 세우기’를 통해 선택적 변화를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심각한 경제적 혼란에 맞닥뜨린 칠레와 인도네시아는 국가의 위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결국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자신을 ‘신중한 낙관주의자’라고 표현하는 저자는 “과거에 효과를 발휘한 변화와 그렇지 않았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은 곤경에 빠진 국가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며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다이아몬드의 신작이지만, 내용은 딱히 크게 새롭지 않다. 해외 일각의 혹평도 눈에 띈다. 뉴욕타임스는 서평에서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이 많고, 일반화의 오류를 저질렀다”고 긴 분량을 할애해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다룬 장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토머스 팁 오닐 하원의장 시절을 셧다운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타협 정치의 모범사례로 꼽았지만, 실제 이 기간에는 셧다운이 8번이나 발생했다. 또 프레임에 맞춰 설명하기 위해 인종·젠더·관용·평등 등 다양한 갈등과 변수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분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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