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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시간 벼농사 프로젝트..."진짜 하고 싶은 일 위해 군량미를 확보하라"

by 정소군 2022. 3. 2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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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신문 문화부 기자인 곤도 고타로(56)가 쓰고 싶었던 기사는 사실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쓰고 싶은 기사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독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관심이 없는데다, 무엇보다 버젓이 음악 담당 기자가 따로 있었다. 동료 기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꿰차기 위해 조직이나 상사의 비위를 맞췄다. 하지만 그는 처세에 서툴렀다. 어느덧 50대가 됐는데도 여전히 닥치는 대로 써야 할 판이었다. ‘올해도 나는 아무 일이나 마구 해야 하는가? 날 얕잡아 보는 건가? 웃기지 마라.’

이래저래 병이 깊어지던 어느날, 충동적으로 지방의 1인 지국에 보내달라고 인사이동을 요청했다. 문화부장이 그를 불렀다. 부장들도 이제 그보다 대부분 어리다. “선배, 지금 장난하는 거야? 지방에서 뭘 하려고?” 그는 그 자리에서 문득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이른바 ‘얼터너티브 농부’. 하지만 진짜 발령이 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내심 ‘설마… 본사에서 나를 놔주겠어?’ 생각했는데, “피둥피둥 살이 오른 자의식”이었다.

그렇게 그는 “평생 스쳐 지나 본 적도 없는” 나가사키현의 이사하야로 내려가게 된다. <최소한의 밥벌이>(쌤앤파커스)는 그가 이사하야에서 팔자에 없던 ‘얼터너티브 농부’로 생활하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을 담은 책이다. 경쾌하게 쓰여졌지만, 그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철학이 녹아있다. 즐겁지 않은 노동을 하며 버티는 삶에 지쳐 탈출을 꿈꾸고 있을 당신을 위해, 곤도씨에게 e메일로‘얼터너티브 농부’로서의 삶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어봤다.

ⓒ 하완


-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다 때려치고 시골에서 농사나 지을까?’란 말을 심심치 않게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가닥 이성이 ‘도망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고 호통치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꾸짖곤 하죠. 당신은 책에서 1인 지국으로 탈출해 ‘얼터너티브 농부’가 된 것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벗어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정확히는 일본어로 ‘벗어나다(脫する)’가 아니라 ‘알고도 모른 체하다(ばっくれる)’입니다. 이 단어는 일본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입니다. 딴청 피우다, 어물어물 넘기다 같은 느낌이랄까요? 도망치는 것은 성실합니다. 적에게 등을 돌리고 180도 다른 방향으로 전력질주하죠. 하지만 도망치는 사람은 눈에 띄는 탓에 쫓겨서 붙잡힙니다. 자본주의는 만만하지 않아서 못 본 척 눈감아 주지 않아요. 모른 체 한다는 건 불성실함입니다. 도망치는 내색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두와 똑같은 게임에 참가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실없이 웃어요. ‘전 당신들과 동류에요’라는 척 하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콧노래라도 부르며 어슬렁 어슬렁 사라져버리는 거죠.”

- ‘모른 체 하기’가 통할까요?

“모른 척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똑같을 수 있지만, 모른 척 하면 지금까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별 일 아닌 경우가 종종 있어요. 원래 노동은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의 원천이었을 겁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싫어하는 일이라도 이를 악물고 해야 할 때가 있죠. 인생은 원래 현실과 타협하는 일의 연속이 아닙니까. 하지만 연봉 200~300만엔 정도밖에 받지 못하면서도 야근수당 없는 잔업을 100시간이나 해야 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람은 연봉 100엔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모욕적인 소리까지 들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선택지가 기껏해야 이 정도 뿐일까요? 하지만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남을 바꿀 수도 없죠.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 이럴 때 특효약이 있습니다. 판을 옮기는 겁니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한쪽 발을 담근 채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만 다른 곳으로 벗어나보자는 거죠.”

- 그 특효약이 당신에게는 ‘얼터너티브 농부’였군요.

“제가 지어낸 말인 ‘얼터너티브 농부’는 전업 농부가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듯 월급쟁이 생활에서 탈출해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글쟁이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거에요. 전 30년 가까이 신문사에 몸 담아왔지만, 여전히 글 쓰는게 싫증나지 않아요. 하지만 활자를 읽지 않고 자라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듭니다. 신문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지? 망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때 문득 떠오른게 ‘얼터너티브 농부’ 계획이었죠. 아무 의욕도 없는 일을 억지로 하는 건 결국 굶어 죽는게 무서워서가 아닐까. 뒤집어 말하면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은 쌀만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굶어 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군량미’를 손수 마련하자는 거였죠. 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이른 아침 딱 한 시간만 생활 방위 사수선에서 일하고, 반찬과 맥주값은 본업인 글쓰기로 벌자. 이렇게 하면 남자 한명이 1년 동안 먹을 쌀은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었어요.”

ⓒ 하완


이사하야에 내려간 그는 운 좋게 ‘사수’가 되어줄 베테랑 농부를 만나 경작하지 않고 방치된 작은 다랭이 논을 빌리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모종을 사려면 농협에 가라는 말만 듣고 농협 은행 창구에 가서 모종을 달라고 했던 일은 지금도 그가 가장 민망해 하는 실패담이다. 매일 한시간씩 꾸준히 논에 나가 땀흘린 그는 조금씩 얼터너티브 농부로 거듭났지만 그런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패션’이다. 그는 다른 농부들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지금도 작업복으로 알로하 셔츠와 챙 넓은 카우보이 모자를 고집한다.

“이건 제 프로젝트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저는 원래 여름에 늘 알로하 셔츠를 입고 다닙니다. 정치인이나 경제계 인사를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난 이런 인간이니 알아서 하시오’라는 유치한 선언이었죠. 그렇지만 패션이란게 원래 그런거 아닙니까. 알로하 셔츠는 글쟁이로서 제 ‘작업복’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농부로 일할 때도 제 스타일을 밀어붙여야죠. 내가 좋아하는 일(글쟁이)을 놓지 않으면서 이런 시대를 살아남겠다하는 각오의 일부입니다.”

그는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 첫해에 85㎏의 군량미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60㎏이면 남자 혼자 1년 동안 넉넉히 먹을 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목표를 1.5배나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 1년치 군량미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후에도 계속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고 계시죠. ‘최소한의 밥벌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정규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넌 신문기자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회사원이니까 가능한 거다. 일본에서도 흔히 듣는 말입니다. 이미 귀에 딱지가 생겼을 정도로요. 같은 회사 후배도 ‘어째서 신문사를 관두고 프리랜서 작가가 되지 않나요?’라고 자주 묻습니다. 물론 군량미를 확보한 후 언제든 신문사를 관둘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해마다 그 믿음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원래 이 프로젝트의 목적도 언제든지 신문사를 관둘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는 거였고요. 하지만 벼농사에 성공하고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데 성공하니 당초의 목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어요. 앞에서도 말했잖아요. 모르는 체하면 문제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고 말이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 벼농사를 하며 ‘군량미’를 확보하는 프로젝트에 도전한 아사히신문 기자 곤도 고타로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알로하 셔츠를 입고 논에서 일하고 있다. ⓒ   Kotaro   Kondo


-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2015년이니까, 지금은 6년차에 접어들었겠네요. 쌀 수확량은 계속 순조롭게 유지되고 있나요?

“지금은 오이타(大分) 현의 히타(日田)라고 하는 산속 지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하야의 논은 여전히 왕래하며 경작하고 있죠. 사실은 지금도 모내기 준비 중이라서 파김치가 된 상태에요. 쌀 수확은 해마다 늘어나서 올해는 단번에 경작 면적을 다섯 배로 늘렸습니다. 도쿄에 사는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증정할까 생각 중이에요.”

- 곤도씨가 ‘최소한의 밥벌이’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라는 천직을 찾아낸데다 심지어 재능까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그러나 사실 많은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잘 모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는 것(박봉인데다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면서 소소한 소비의 즐거움이라도 누릴 수 있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 같아요.

“제가 ‘글쓰기’라는 천직을 찾아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실제 입사 후 3년 동안은 지옥이었어요. 그런데 글쓰기가 좋아지니 잘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에요. 좋아하는 일은 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그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 걸지도 몰라요.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상대방에게 차여 실연당할 때도 처음에는 슬프지만, 사실 차이는 것은 자신도 상대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 2년 전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인 이나가키 에미코씨가 쓴 <퇴사하겠습니다>가 한국에 출간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 의존하지 말고 진정한 나의 삶을 찾자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곤도씨와 연결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나가키씨가 기자였을 때 회사에서 마주친 적은 있나요?

“이나가키씨와 비교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같은 신문사 출신이라서 그런가 봐요. 사실 입사 동기지만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또 그녀와 비교되는 게 가장 섭섭해요. 제가 하는 일과 그녀가 하는 일은 정반대입니다. 성실함의 차이죠. 전 성실하지 않습니다.”

-곤도씨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라도 바꾸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셨죠. 이렇게 자신을 바꾸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결국 사회도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곤도씨는 원래 사회는 추하고, 그래도 사회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에 저처럼 괴짜가 늘어나고 별 볼일 없는 얼터너티브 농부가 유행한다면 글로벌 대자본은 반드시 박살내러 올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해선 안될 사람이니까요. 자본은 빈곤층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이용해 ‘낮은 급여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일할 곳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그런 건 아직 몰라도 됩니다. 그냥 계속 움직이면 됩니다. 데굴데굴 구르듯. 라이크 어 롤링스톤즈(Like a Rolling Stone)예요.”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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